피난민 집같은 대문 옆에는 '안금순, 정옥근' 두 이름이 나란히 쓰인 문패가 걸려 있다.
"내이름은 안금순이, 우리 영감님 이름은 정옥근이. 인자 죽어서 문패에가 있어. 오래되야 문패가 없지.
쩌 전화책에도 있고... 전화책 나온 뒤에 죽어나서 새로 나오면 안 찍히지. 인자 새로 나오믄 안 찍혀, 근디 찍혀갔고 있어 시방은...",
"나는 말띠고, 영감은 쥐띠여, 쥐띠라고 얼매나 고집이 많다고..., 나는 고집 없어. 내비도야 혀, 내비도야. 지멋대로 허지 먼소리 못혀,
남자들 고집시면 내비 도야 혀, 죽으면이야 가꼬 갈까 소용 없어, 생전 나는 이겨보도 못 허고 살았어. 내비라 도야 돼, 허는대로... "
"시방은 각시를 금덩이로 안디 그전에는 뭐 각시 그까이꺼 얼매나 알아 줬간디? 어이고 시방 젊은 사람들은 얼매나 귀히 모신다고.
그전 같으면 살도 안혀...그리고 살았다네..., 아이고...그리고 이세상을 떠났다네...그냥 죽었지 죽을때가 되니까, 자는디 그렇게 갔지 뭐.
하루 안 묵고 말도 안 허고, 하루 안 묵고 누웠더니 죽었데, 안 묵으면 죽어, 누구든지 안 묵으면 죽어. 묵으먼 안죽어. 아무리 아퍼도 묵으먼 안죽어. 안묵으먼 죽어"
열일곱에 시집왔는데 일흔일곱 되던 해에 돌아갔으니, 똑 60년 같이 살았다.
콩대를 다 털고 나서 바닥에 떨어진 콩을 줍고 있자니, 아랫동네 아낙이 들른다. 몇 일전 반나절 삼 써는 일을 했더니 그 일당을 주러 오는 길인 것이다. 힘든 일이라면 못했을 텐데 앉아서 하는 일이라고 해서 했다. 일당 만 오천원을 앉아서 받았다.
"그전이는 하루 점디락 히도 쌀 한 되고, 밭 매야 무신놈의 샛거리가 있간디, 배 쫄쫄 굶고 쌀 한 되지. 지목구녁도 못 묵어. 근디 시방은 하루 일허먼 돈이 얼매여... 쌀이 두 말이여 꼭 쌀이 두말이여, 하루 일 허먼. 어띠케 이렇게 세상이 살기 좋게 됐는가 몰라...시상 겁도 안 나지 돈이 이렇게 흔혀."
글 전봉선 (월간 白雲 2008.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