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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간척지 노숙 퇴근 후 로보백에 캠핑 기본물품 및 군임석거리를 장착하니 21시 반, 간척지 파고라에 도착하니 22시 반이다 사지의 움직임이 격하지도 않건만 땀은 한바가지. 한여름이다 일단 마음의 안식처, 텐트부터 셑팅허는데 웬 모기가 이렇게 억센지 온 몸 여기저기 총맞은 것처럼 초토화된다 이어 1.5리터 펫트병물을 1인용 냄비에 가득 붓고 그야말로 요양병원 시신 염허듯기 손바닥에 찍어 온몸 구석구석 닦아내니 깜냥 뫼욕이라고 개운해진다 캠핑의자에 깊숙이 앉아 밤의 적막을 만끽하기엔 애시당초 글러먹은 일. 빤스조차 걸치지 않고 텐트로 후딱 둔너버린다 새북에 먼 토사곽란이 예비되어 있을려나, 수면과 월면이 데깔꼬마니마냥 은은하다  풍찬노숙의 백미 이튿날 새북 태양과 함께 기립
w650 반촌길 부유 남북 기린대로에서 반촌1길로 살짝 들어선다. 일순 놀랍도록 고요해진다. 새북인 걸 감안해도 대체 이 곳이 대한민국 전주 한가운데가 맞나 싶을 정도다. 60~70년대풍의 2층 양옥집-백서장댁-이 장승마냥 골목초입을 호위하고 있다. 붉은 벽돌에 나무창틀을 보니 그 시절 전형적인 문화주택이다. 마당에는 감나무 한그루가 식재되어 있다. 대지는 대략 90평이다. 스레이트 창고도 세월에 고태미가 흐른다. 오도바이 야삿대는 물론이요, 티코 석대도 거뜬히 댈 수 있을 정도로 길쭉한 창고다. 10여년 전 백서장이 가시고 반 년 전 아내도 가신 터라 현재는 빈집이다. 건물가격은 없고 부지가격만 평당 300만원 초반대니 실거래라면 얼추 3억 정도다. 한 번 저질러 볼까, 일견 솔깃하지만 상상으로 족하다. 월세로라도 타전해 ..
XE50, 웨리단길 XE50에 로보백 중짜를 얹으니 역시 조화롭진 않으나 나름 독특한 매력이 있다 로보백에는 땅콩과 수리미, 보온크피, 캠핑용 안락의자를 챙겨넣었다 일발시동이다 첨엔 시동도 잘 안 걸렸던 놈이 이제 제대로 질이 나 있다 어은터널을 통과, 도토리골 내리막길을 할리우드 베버리힐즈로 녀기며 쫀득쫀득하게 달리고 충경로를 관통헌다 목하 보행자진화형 블록을 설치중이니 날로날로 달라지고 있다 시내의 상징, 객사에서 한 캇 냄긴다 이어 오늘의 목적지, 웨리단길. 새북 다삿시 이곳은 오가는 이도, 차도 없으니 원하는 곳에 세우고 사진찍기에 그만이다 흐린 하늘 향해 우뚝솟은 가로수 가로수마다 잡새들이 깃들어있고 어느 새는 보도에서 깡총대며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댄다 대체 쟤네는 언제부터 웨리단길에 서식했을까 새가 자고 일어나는..
금산면 용화부락 금산사 초입 용화부락, 금산교회와 금산초교, 증산교 본당이 있는 부락이다 위성지도를 보니 전면에는 금평지가, 좌우로는 제비산과 무명산이 각각 호위중이고 금산사와 모악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드넓은 호남평야가 끝나고 노령산맥이 융기하는 곳에 암모나이트처럼 웅숭거리고 있으니 가히 천하의 길지라 할만하다 목하 능소화를 비롯, 무명씨 여름꽃이 창생 중이니 돌담돌담 화향이 그득허다
해 질 녁 해 뜰 녁 스테레오로 노송동을 걷다 바로 옆 부락이 연접한 시골아파트에 살며 퇴근 후 밥 먹고 나서, 새북에 일어나, 매일 아침저녁 두 번씩 걷는 부락길은 그야말로 중년 이후 나의 원동력이다. 온전한 두 발과 두 팔을 저으며 지금 한창인 능소화, 자귀나무꽃, 금계국에 인사하고 왕성하게 논물을 빨아올리는 벼에 눈맞추며 사시사철 창창한 노송아래 두팔 들어 스트레칭하는, 자연과 하나되는 루틴을 통해 그야말로 행복을 읊고 강화하고 있다 삼무실에 출근해서는 점심 후 잠시 노송동 골목을 걷곤 한다. 오늘은 노송동에서 잤으니 해 질 녘, 그리고 이튿날 해 뜰 녘 두 번을 걸었다. 원도심 골목도 논길 못 지 않게 소소한 즐거움에 때로는 경이로움까지 준다. 어느 집은 일정 때 지어졌으니 못 해도 80년은 되었을 텐데 80년 전 어느 날이 여전히 현재인 듯..
타우너타우너 휘발유타우너는 아닐까 옅게 기대했지만 역시 LPG타우너다 풍신을 보아하니 농사용이다
대우자동차 라인업 자동차하면 대우. 대우차하면 고속안정성과 에야콘이 발군이지 코베이에서 2.5만원에 낙찰받은 1985년판 대우자동차 라인업이다
대전역 소제동 부유 KTX도 논천민자도 없던 90년대 그 시절, 전주에서 서울로 오가며 느을 관찰자의 시각으로 일별했던 대전. 티코를 끄시고 호남고속도로 대전쯤에서는 항시 ‘집이 대전에만 있어도 살긋그만.’했다. 지금 생각하니 티코로 무려 세 시간을 내내 때려 밟았으니 고난의 장거리였다. 브로엄 쫓아가느라 시속 ?40키로까지 밟던 짜릿함도, 구간구간 휴게소마다 들러 광역삐삐 구간설정해주던 DDD버튼음도, 대전즈음에서는 어제처럼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