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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은 다음날(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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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트가요 레코오-드 전집(유니버살 레코드社1969) 1971년식 혼다 타악기를 듣고 1969년간 힛트가요 레코오-드 전집을 읽다
방금 떠나온 세계<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나를 이용한 거야? 이미 태어난 나는 어쩌고?”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 태생적 결함이, 사실은 결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사제가 말했습니다. “신도 금기도 없지. 오직 약속만이 있단다.” 저는 바닥에 머리를 기대고 여전히 그 공간을 떠돌고 있는 목소리의 잔해를 들었습니다. 제가 평생을 지나도 이해할 수 없을 어떤 결정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먼 우주에서 온 작은 존재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떼어 주기로 결정하는 마음이, 이 잠든 행성 벨라타 전체에 깃들어 있었어요. 저는 눈을 감고 그들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 오래된 협약을, 수백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지키고 있는 존재들을.
저 외딴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정원정> 정원정 작가를 알게 된 건 재작년 겨울 녹색평론에 실린 어느 회고수필에서였다. 일제 강점기 말엽에서 융니오기간 고창군 부안면 김성수 생가일대 시골에서 성장하는 어느 소녀의 인생이야기였다. 세상에 70~80년전 생활사를 이토록 명징하고 오롯이 풀어내 수 있다니... 고창분인데 대체 정원정 작가는 누구시고 이제서야 알게 됐을까? 10여페이지의 짧은 글이지만 잔상은 아직도 내게 손짓중이다. 가히 같은 시기를 회고한 김성칠의 역사앞에서와 박완서의 그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이후 10년만에 맛 보는, 토색 넘치고 웅숭깊은 글이다. 저 외딴집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 내 나이 사십 중반, 한창 아이들 뒷바라지에 경황없이 동동거리며 세월을 업고 있었다. 어디선가 정지란 활자와 마주쳤다. 왈칵, 길수나 깨달은 듯 내 ..
<만인보 8>솔리 추씨 외 솔리 추씨 사천에 가을 추자 추씨 하나 사는데 큰부자라 일년 내내 소나무장작 참나무장작 벼늘이 두어 길짜리 서너 채 끄떡없다 머슴 넷에 꼴머슴 한 놈 화양 마서 기산 화산 일대 가는 데마다 소작인 머리 굽실거리고말고 그 추씨네 집 딸도 부자라 을숙이 병숙이 정숙이 무숙이 경숙이 ..
7세 제왕 <만인보 13, 14 ,15> 7세 제왕 스무살 미만 열다섯살의 고주몽이 세운 나라 고구려 궁궐은 초가였다 저 멀리 압록강 물이 불어났다 그 나라는 날로 일어나 초가 궁궐이 으리으리한 궁궐로 바뀌었다 제6대 제왕 태조는 일곱 살에 즉위 제왕은 팽이를 쳤다 어머니가 어린 제왕을 보살폈다 신라 진흥왕도 일곱 살..
만인보5 쌀봉이 태욱이 아저씨 딸 쌀봉이 늘 인형 만들어 인형 업고 다니던 쌀봉이 커서 이웃집 아기 업어주던 쌀봉이 어머니가 밥 굶으며 반대하는 사내한테 기어코 그 사내한테 달아나 군산 째보선창 못 미쳐 방 얻어 신접살이 차렸는데 신랑이 빈털터리라 제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이 집 저 ..
만인보4 <고은> 잿정지 문종안이 딸 세 살 때 소경되어 스물일곱살 먹어도 누가 데려가야지 늘 툇마루 걸레질이나 하며 늙은 부모 굽은 허리로 일 나가면 집이나 보는데 볼 것도 없는 집이나 보는데 그런 때 짓궂은 아이들 풍뎅이 잡아다 떡 하나 줄게 입 벌려봐하고 풍뎅이 넣고 도망친다 또 그런 때 짓..
萬人譜3 <고은> 나운리 가게 외삼촌이 나 자전거 태워 십리길 갈 때 나운리 가게 앞에서 외삼촌은 물 얻어먹고 나는 눈깔사탕 사 줘서 입에 넣었다 먼지 쓴 유리상자에 눈깔사탕 여남은 개 있었다 명태 한 죽도 시렁에 얹혀 있었다 가게방 미닫이문 창호지에 유리가 박혀 방안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