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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진들

새북 곰티재 한바리 그리고 모래재 옛사진

새북 곰티재 한바리 그리고 모래재 옛사진

 

곰티재

1592년 임진난당시 왜놈들이 전주성으로 쳐들어오며 굽이굽이 넘었다던 고개

과연 500년 전 왜놈들이 넘긴 넘었던 걸까?

뜬금없는 호기심이 발동하지만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신화인지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역사는 9.9할이 여백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백은 상상력으로 메우지 않던가

다수는 바다로, 일부는 육지로, 또 그 중 일부는 곰티재를 넘긴 넘었을 것이다

메르카토르도법으로 제작한 지도는 없었지만 그만큼 동물적인 촉수는 발달해 있었을 터

훨얼씬 정밀하고 공간효율적으로 넘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곰티재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곳에서 시작되는지 막연하게 짐작만 했을 뿐이니 위성지도를 통해 실위치를 꼼꼼히 짚어본다

소태정고개를 타기전 오른쪽 모래재쪽으로 빠져 다시 모래재 입구에서 오른쪽 골짜기로 계속 들어가면 곰티재로 연결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아침 야삿시 반 에콜아파트를 나와 전주시를 S자로 관통하여 전주-진안간 도로에 올라서니

이른 아침이라 차는 없으며 호남정맥 저 멀리 진안쪽에서 비춰오는 아침해가 버얼겋다

오늘 처음 둘반에 쇼에이를 쓰고 왔으며 비콤 블루투스로는 90년대 락발라드가 무한재생중이다

최재훈의 애상갚은 울림에 우왁우왁 쓰로틀음이 묘한 회오리를 일으키니 흡사 열화전차속 유덕화느낌이 작렬헌다

 

곰티재라는 표지판 하나 없는 골짜기 마실길로 들어가기만 하니 내가 맞는 길로 들어선 것인지 저어하나 사위를 둘러보니 이 길이 아니면 딴길은 도저히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계속 진입한다

이윽고 곰티재로 생각되는 비포장산길 입구까지 왔으나 역시 표지판은 없다

잔자갈이 깔려 있어 다소 긴장하며 올라가나 이내 마른 흙길이 이어지며 양옆은 짙푸른 활엽수가지가 드 리워져 내내 신선한 그늘이, 잎사귀에서는 연하디 연한 서기를 내 품는가, 상서로운 연무에 목향이 은은하다

고개길 아래에는, 모래재와는 달리, 아찔한 단애는 잘 보이들 않는 것이 역시 이곳 길의 역사는 유구해 보이니 왜장이 넘긴 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단 지금과 같이 차 한 대가 지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며 포도시 말필이나 교행이 가능한 정도가 아니었을까?

60대까지는 전주~진안간 직행버스까지 다녔다 하니 꿈결속 정경이다

 

 

소태정고개를 타기전 오른쪽 모래재쪽으로 빠져 다시 모래재 입구에서 오른쪽 골짜기로 계속 들어가면 곰티재로 연결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윽고 곰티재로 생각되는 비포장산길 입구까지 왔으나 역시 표지판은 없다

 

 

 

 

잔자갈이 깔려 있어 다소 긴장하며 올라가나 이내 마른 흙길이 이어지며 양옆은 짓푸른 활엽수가지가 드 리워져 내내 신선한 그늘이, 잎사귀에서는 연하디 연한 서기를 내 품는가, 상서로운 연무에 목향이 은은하다

 

 

 

고개길 아래에는, 모래재와는 달리, 아찔한 단애는 잘 보이들 않는 것이 역시 이곳 길의 역사는 유구해 보이니 왜장이 넘긴 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60년대까지는 전주~진안간 직행버스까지 다녔다 하니 꿈결속 정경이다

 

 

 

 

임진난 당시 격전지였던 곰티재 정상부근 웅치전적지

 

 

 

 

정상일대에는 스페인의 어느 순례길마냥 평지길이 이어진다

 

 

 

 

1972.11. 27에 바로 옆에 모래재가 뚫리면서 1000년 고개 곰티재의 역사는 저문다

<사진출처 : 전북도청 공보관>

 

 

1966년 곰티재를 넘던 직행버스의 추락으로 16명 사망 등 7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곰티재를 넘고 드디어 아스팔트가 나온다

 

 

 

 

모래재 휴게소서 쉬어가던 중 한캇

 

 

 

둘반에는 오늘 처음  쇼에이를 쓰고 왔으며 비콤 블루투스로는 90년대 락발라드가 무한재생중이다

최재훈의 애상갚은 울림에 우왁우왁 쓰로틀음이 묘한 회오리를 일으키니 흡사 열화전차속 유덕화느낌이 작렬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