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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hodgePodge)

간만에 띵작 보다, 먼지로 돌아가다, return to dust, 隱入塵烟

5,000년 전 시경에는 저항시와 노동요가 많았다.

몇 천년 전 기록이 마치, 며칠 전 띄운 편지처럼 읽혀지고 있는 유일한 문명이 중국이다.

2시간 16분간 먼지로 돌아가다를 보며 흡사 5,000년전 중국 어느 농촌을 보는 듯 아련했다.

영화속 유철과 귀영의 삶이 반만년전 중국 농민의 삶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나에게 맞춤제작한 듯한 줄거리와 영상이다.

재래식 농법에 진한 향수를 느꼈고 사랑한다는 말은 없지만 지고지순한 부부애도 돋보였다.

가히 내 인생 손가락안에 들 수작이다.

유툽에서 이런 띵작을 무료로 감상하다니... 오래오래 기억하고자 줄거리를 정리해 본다

그리고 오늘부로 넷프릭스는 해지한다

 

주연 武仁林 海淸

 

유철은 글을 모른다.

빈농의 넷째아들 마유철(馬有鐵)은 평생토록 단 한번이라도 살던 곳을 벗어난 적도 없다.

유철을 방치하디시피한 형제들은 무슨생각에서인지 50을 훌쩍 넘긴 그에게 짝을 찾아준다.

말이 결혼이지, 사실상 집밖으로 내쫓는 셈이다.

 

유철의 아내 조귀영(曺貴英)은 배변장애가 있다.

사지도 온전치 못하다.

귀영은 푼돈에 팔려 온 자신이 한스럽고 어수룩해 보이는 남편도 못마땅하다.

회푸대로 오려붙인 인형마냥 느을 어두운 무표정이다.

그러던 어느날 유철은 형제에게 학대받은 당나귀를 따뜻하게 다독거리고 이를 계기로 귀영은 차차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유철은 아내를 초지일관 지극정성으로 대했다.

심란한 마음에 잠을 청하지 못 하고 침상에 오줌을 누어도 유철은 걸레로 닦아내고 아내를 누인다.

추운 밤 문밖에서 이제나 저제나 호호 손을 불며 유철을 기다리는 귀영.

당나귀를 끌고 막 골목에 들어서는 유철에게 뜨거운 물병과 호빵을 건넨다.

유철은 손사래치며 오히려 아내를 걱정하고 아내의 손과 볼을 물병으로 녹인다.

둘은 골판지로 만든 부화박스안에 산란을 어루만지며 병아리를 꿈꾸고 닭을 팔아 염소를, 염소를 팔아 소를 들일 생각에 말없이 미소 짓는다.

유철은 강냉이를 파종하기 위해 당나귀를 부리며 귀영은 쟁기보습에 앉아 흙을 고른다.

밀을 파종하며 싹이 날지 쭉정이를 걱정하는 귀영.

인생이 그러하듯 씨앗도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며 유철은 귀영과 함께 쭉정이를 어루만지며 황토먼지 뿌연 밀밭을 바라본다.

 

밀을 베고 구루마에 밀단을 싣는다.

사지가 온전치 못한 귀영은 비틀비틀 자꾸 넘어지면서도 한단이라도 더 올리려 안간힘을 쓴다.

유철은 우직한 귀영이 못마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픈 아내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이 처량하다.

해질녘 둘은 밀짚노적가리에 기댄 채 멀리 밭두렁에서 킁킁대는 당나귀를 바라본다.

유철은 소작료를 정산하고나면 도시의 큰 병원에서 귀영을 치료해 주겠다고 한다.

평생을 뒤뚱거리며 살아온 귀영은 이런 유철에게 더욱 미안함과 애틋함을 느낀다.

 

요 며칠새 밀까끄러기에 귀영은 온몸에 가려운 발진이 생겼고 유철은 개울로 데려가 정성껏 씻겨준다.

자동차 전조등과 달빛에 개울물이 한층 일렁이고 바람에 지지 않으려는 듯 물소리도 세차다.

 

며칠 후 유철은 동네우물가에서 끔찍한 소식을 듣는다.

혼자 몸을 씻던 귀영이 급류에 휘말려 죽은 것이다.

싸늘하게 굳은 귀영을 들쳐매고 유철은 오열한다.

장례도 없고 조문하는 이도 없다.

유철은 홀로 분향하고 불모지 한 켠에 귀영을 묻는다

이어 가족과 다름없던 당나귀를 놓아줬다.

당나귀는 제자리에서 맴돌 뿐 어찌할 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온 유철은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며 눈물짓는다.

결혼식을 대신한 결혼증명사진이다.

이어 침상에 누워 밀집 까끄러기로 엮은 당나귀를 꺼낸다.

뾰족한 까끄러지 한오라기가 천천히 꺾어지며 유철도 숨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