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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hodgePodge)

喊山, 산이 울다, mountain cry, 2015년 작

喊山
1984년 중국 산간오지의 토색 찐한 한 부락이다. 어찌나 첩첩산중인지 도대체 산아래 문명세상이 있기나 한지, 산 아래로 내려갈 수나 있을지 의심될 정도로 고산지대다. 주산물은 옥수수이지만 매끄니끄니 밥은 엄청난 고봉밥이다. 아마 영상에 보이지 않는 어느 곳에 계단식논이 있으리라.
한총(韓冲, 王紫逸)과 홍시아(紅霞-郞月婷)는 한마을 이웃지간이다. 홍시아의 남편은 그녀에게 극한의 학대를 밥먹듯이 자행하지만 그녀는 속수무책이다. 어느날엔 한총이 폭행을 저지하지만 흉기로 위협하는바람에 어쩔 도리가 없다.
 
부락민은 덫으로 토끼도 잡고 오소리도 잡는다. 한총은 산속 비탈진 곳에 오소리덫을 놓고 광산에서 구한 폭약까지 설치해둔다. 얼마 후 하필 홍시아의 남편은 한총의 오소리덫을 밟아 그 자리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그날 밤엔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만다. 마을총회에서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공안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하고 해결방안까지 제시한다. 한총의 집에서 홍시아에게 2만위안의 배상금을 지불하며 한총이 홍시아와 두 자녀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다. 2만위안이면 360만원이고 40년전이면 지금의 가치로 얼추 3000만원이다. 산간오지의 빈농이 3000만원이란 큰돈을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마을사람들은 호적도 없고 벙어리라고 홍시아를 얕잡아보지만 그녀는 말만 하지 못할 뿐 정상적으로 들을 수 있고 의사결정 또한 분명하다. 2만위안의 배상금을 받아들이겠냐는 총회측의 물음에 不要라고 일필휘지로 표시한다. 모두들 흠칫 놀라는 눈치다. 남편의 학대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홍시아다. 한총은 홍시아와 두자녀에게 헌신하며 차츰 그녀의 내면에 빠져들게 되고 사랑이 깊어진다.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홍시아는 협곡 어귀의 산턱에서 솥단지를 두들긴다. 반향되어 들려오는 두드림이 사랑의 노래요, 기쁨의 환희다. 함께 옥수수를 수확하고 옥수수죽을 쑤며 끊임없이 무언의 사랑을 주고받는다.

어느날, 홍시아 남편이 저질렀던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공안이 부락에 들이닥치고 은폐된 오소리덫의 진실이 한겹 한겹 드러난다. 한총은 양손이 수갑으로 채워지고 다마스승합차의 철재의자밑에 결박된채 현장검증이 진행된다. 사건의 현장으로 일군이 무리들이 터벅터벅 걸어간다. 현장에서는 홍시아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일행은 흠칫 놀란다. 그녀는 人是我殺(제가 살인자입니다) 라는 골판지 팻말을 든 채 한총의 무죄를 소리없이 절규하고 있다...

1984년에 이웃과 유리된 중국의 험준한 산간마을이라는 시대와 장소를 감안하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다. 1984년이면 내가 10대 초중반이다. 내가 살던 부락에서도 형대신 군대를 다녀온 아저씨, 내 새끼가 아닌데 내 새끼인 줄 알고 애지중지 키우던 벙어리 아저씨, 윗집 본각시 아랫집 첩각시를 오가며 두집살림하던 아저씨, 화재로 가슴 한쪽이 소실돼 첫날밤에 소박맞았다던 어느집 큰애기 등 등 일상적이지 않으면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넘실댔다. 살아가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나 인간의 탐욕, 집단의식은 인간세상 어디나 다 똑같을 터. 人是我殺(살인자는 접니다)라고 쓰인 골판지팻말을 보는순간 코끝과 눈시울이 격하게 찡해진다. 갈수록 세상에 순응하는 중년이다.
 
#人是我殺#郞月婷#王紫逸#喊山#산이울다
 

 

 

 

 

人是我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