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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서울시 이모저모

간만에 인천 송림동 부유


부천까지 왔으니 인천을 지나칠 수 없다. 부천역에서 송림동까지 불과 20~30여 분. 오늘은 미세먼지가 누그러들었고 햇살도 따스허니 걷기에도 딱 좋은 날이다. 부평-십정을 지나 주안철길 고가를 건너 도화쯤이면 어디에서나 보이던 낡은 코크리트 외양의 맘모스체육관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이젠 이편한 세상이라는 레떼르가 새겨진 거대한 밀집축사형 공동주택이 버티고 서 있다. 아직 공사중인건지, 입주중인지건지 불불분명한 납작한 콘크리트 건물은 모다쑈에서 박제된 미소를 선보이는 성형미인이듯 상당히 근대화되어 보인다. 몇 년째 공사 중이다. 이젠 거의 마무리단계로 보이지만 몇 년이 더 흘러야, 몇 번을 더 봐야 익숙한 풍경이 될까? 일대 간선 도로까지 없애버릴 만큼 위력을 과시하는 밀집축사형 공동주택은 송림동까지 연잇는다. 인근의 민가는 일망타진되었을망정 교육백년지대계라고 서화초등학교는 20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당시 초등학생들도 이젠 불혹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고 어쩌면 그들의 2세가 다시 서화초등학교에 입학했을 수도 있겠구나...송림동 현대시장쪽 언덕부락은 20년 전 그대로이되 멀리 사위는 역시 밀집축사형 공동주택이 점령해 버렸다. 언덕부락 이면도로를 서서히 걷고 현대시장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른다. 융니오 이후 피난민들이 주축이 된 부락이라 시장이름도 현대시장이다. 이를테면 역시 피난민들이 주축이 된 이서 정농부락은 정착농원이요, 후농부락은 후생농원이듯 융니오의 흔적은 이름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당시 현대시장 본정통 사거리에는 고무다라이에 견과류를 놓고 팔던 초로의 아줌마가 있었다. 한봉지에 2천원이던가, 5천원이던가 항상 한 봉지를 사서 캔맥주 한 잔 찌크리곤 했었다. 중국산 땅콩-化生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이리 북부시장 단골집에서 국산땅콩만 사 먹고 있지만, 어찌 그시절 인천 현대시장 化生의 맛을 잊을 수 있으랴... 이젠 인천 현대시장도 여느 재래시장과 매일반으로 시장현대화사업 이후 장옥마다에는 무슨 무슨 상인대학 수료부표가 걸려 있다. 골목골목에는 모노륨 분위기가 나는 우레탄 바닥이 깔려 있으며 좌판상마저 사라져버려 통로는 한결 넓고 밝아져 있다. 왠지 그 시절 시장 특유의 온기는 느낄 수 없으니 나이들어 가는 나의 탓과 현대화의 돈탓이 맞물린, 회오리탓일 것이다. 마당의 흙먼지를 쓸어낼 요량으로 장옥 그릇가게에서 5천원짜리 동남아산 쑤시빗자루를 하나 사서 장거리를 느릿느릿 빠져나온다. 익숙한 풍신의 초로의 노형이 시야에 들어온다. 골격이 장대하고 약간은 색목인기가 느껴지는, 상당히 이국적인 풍모여서 20년 전에도 인상이 선연했던 인물이었다. 서양인 남자와 내국인 여자 사이에서 난, 소위 튀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모습 그대로 이곳에서 20년만에 마주치다니 내심 반갑고 순간 아련해진다. 20년 후에도 이곳 현대시장 장옥 본정통 교차로에서 마주칠 수 있을까...




















有口無言





















야는 DNA 분석을 히 보먼 사람에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