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은 다음날(book)

저 외딴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정원정>

정원정 작가를 알게 된 건 재작년 겨울 녹색평론에 실린 어느 회고수필에서였다. 일제 강점기 말엽에서 융니오기간 고창군 부안면 김성수 생가일대 시골에서 성장하는 어느 소녀의 인생이야기였다. 세상에 70~80년전 생활사를 이토록 명징하고 오롯이 풀어내 수 있다니... 고창분인데 대체 정원정 작가는 누구시고 이제서야 알게 됐을까? 10여페이지의 짧은 글이지만 잔상은 아직도 내게 손짓중이다. 가히 같은 시기를 회고한 김성칠의 역사앞에서와 박완서의 그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이후 10년만에 맛 보는, 토색 넘치고 웅숭깊은 글이다.

 

저 외딴집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

 

내 나이 사십 중반, 한창 아이들 뒷바라지에 경황없이 동동거리며 세월을 업고 있었다. 어디선가 정지란 활자와 마주쳤다. 왈칵, 길수나 깨달은 듯 내 가슴에 푹 젖어드는 것이었다. 본디 정지는 끼니때가 되면 밥을 짓는 곳이었다. 서녘 햇살이 바라지에 설핏 비껴 들 즈음. 엄니는 으레 저녁거리를 챙기셨다. 정지 바닥은 흙바닥이었지만 수십 년 결이 나 있어서 미끈거렸다. 흙으로 돋은 부뚜막에는 판떼기가 놓여 있었고, 크고 작은 무쇠 솥단지가 걸려 있었다. 솥 아래에는 굴속 같은 아궁이가 배고픈 짐승처럼 늘 시커메진 입을 벌리고 있었다.아궁이에 허구헌 날 불쏘시개로 장작개비나 잎나무에 불 붙여 밥을 지었고, 군불을 지폈다. 솥에서 밥물은 넘쳐 흐르고 결결이 냇내도 따라 퍼졌다.

초가집 처맛 기슭의 낮은 굴뚝에선 유회색 연기가 당싯당싯 바람에 날렸다. 날이 잠포록할 때면 더러 연기가 밑턱 구름처럼 땅위를 더듬으며 흩어졌었다. 살강 밑과 바라지 창살에는 몇 해째 묵은 더께가 궁기처럼 비금비금 붙어있었고 바람벽 구석에는 그을음으로 옷을 입은 거미들이 한들거렸다. <157p 순우리말의 말맛 中>

 

 

 

 

歸鄕

하늘도 땅도 슬퍼하는 不安한 흐름 속에

못내 서러워하는 가난한 젊은 靈魂

머리 숙여 歸鄕길 더듬어오니

바람만이 내 가슴 부비어 주네!

 

가이없이 가이없이 옛꿈 사러저

이미 잃어버린 아우

이가슴 사모치는 그리움을

차라리 바람이여

거세게 모지게 불어

내 오래 고힌 눈물 씻어 가려무나

 

1952. 4. 8.

졸업하고 돌아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