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 추씨
사천에 가을 추자 추씨 하나 사는데
큰부자라
일년 내내 소나무장작 참나무장작 벼늘이
두어 길짜리 서너 채 끄떡없다
머슴 넷에 꼴머슴 한 놈
화양 마서 기산 화산 일대
가는 데마다 소작인 머리 굽실거리고말고
그 추씨네 집 딸도 부자라
을숙이
병숙이
정숙이
무숙이
경숙이
신숙이
임숙이 일곱 자매라
첫딸 갑숙이는 진작 죽어 을숙이가 맏이 되고
무숙이와 경숙이 사이
기숙이라야 할 터인데
까딱 뱀 사자 모양이라
그 뱀 사자 뛰어넘어 죽을 사자 넘어
경숙이가 되었지
딸부자이매 사위부자인데
한데 변변한 사위 없어
다 처가살이에 붙어사느니
을숙이 남편 김길현이는 마름을 다스리고
병숙이 남편 노필섭이는 장인 서기
정숙이 남편은 큰처남 뒷바라지
무숙이 남편 문종수는 마서농장 감독이고
경숙이 남편은 기산면 산림을 맡고
신숙이 남편은 처가 살림 서무 맡고
임숙이는 아직 열여섯이라
여기저기서 침 삼키며 탐내는 자리인데
추부자 추씨 큰 소리로 말하기를
아서 임숙이란 년은
천리타관으로 시집보내버려야지
이놈의 피라미떼 사위 등쌀에 넌더리나도
이만저만 난 것 아니네
그 말 받자마자
추부자 마누라 금비녀 금이빨 번득이며
그 무슨 소리요
우리 막내 임숙이 서방은
내 곁에 둘 것이오
내 곁에 두고
내가 쇠뼉다귀 고아 멕일 것이오
심봉사
한내 송방 뒷골목 당달봉사 심봉사
진짜 성은 김가인데
사람들이 김봉사 대신 심봉사라 부른다
지팡이 동무하여
애저녁마다 정거장에 나온다
한동안 정거장 마당에 무연한 듯 서 있다가
지팡이 짚은 손 바꾸기도 한다
열네살짜리 외동딸
동네 아낙 따라
새우젓장수로 나선 지 벌써 해가웃이다
장항것이 싼값이므로
동네방네 이고 다니며 다 팔고
해거름에 장항 가서
한 다래끼 받아 이고
막차로 온다
이윽고 정거장에 기차 멈추고
몇 사람 내릴 때
거기 심봉사 외동딸도 내려야 한다
아부지!
하고 맨 먼저 옥 구르는 소리로 부른다
심봉사의 어둠에 금방 가득 찬 빛이여
딸의 목소리여
아가 인제 오냐
예 아부지
그 어디에 어둠인다
두 사람 사이의 천 길 기쁨이여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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