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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일상들

정농부락 어머니께 새해인사

이웃부락에 어르신이 돌아가신 후 유품으로 남은 오도바이를 우연찮게 넘겨받은 지 거진 10개월차다. 다삿대의 오도바이와 교차로 타는지라 적산은 많지 않았으나 탈 때마다 신품같은 쫀득쫀득함에 감탄에 감탄을 마지 않던 터, 너무나 감사헌 마음에 정농부락 윤순애 어머님께 한끄니 대접해야지 했는데 이제야 뵈었다. 오도바이도 오도바이지만 어머님의 명징한 인생사를 더 듣고 싶었고 농가 살림살이의 정겨움을 만끽하고픈 마음이 더 작용했다.

토요일 오전, 먼 식사대접이냐, 집에서 하자며 극구 사양허시는 어머니를 태우고 바로 옆 콩뿌리콩나물국밥집에 갔다. 식사 전 국밥집앞에 미리 대 놓은 효성크루즈에 킥을 차 앵앵 시동음을 보여드렸다.

아니 고물을 갖다가 이렇게 쌔놈으로 맹글어놨냐며 반가워 허신다.

네 존 물견 주시갖고 너무너무 감사허그만요.”

그려 안전허게 잘 타, 글고 오도바이만 타지 말고 여자도 따땃허게 품에 품으바바. 남자가 여자를 품으야 건강헌 뵙여.”

긍궤요이.”

황태콩나물국이 아조 맛납다며 반찬 하나 냄기지 않고 다 드신다.

이어 어머니집에서 쌍화차로 정담을 나눴다. 거실이 냉골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노인네들이지만 너무 차고 그 흔한 전기온풍기 한 대 없으니 애틋함이 증폭된다.

하이고 융니오 때 7살에 피난 와갖고 어찌어찌 장착헌 고생은 말로 다 못 혀.”

먼젓번에도 얘기힛지만 내가 우리 염감을 12살부터 만났잖여.”

하이고 부모님헌티 걸릴깨미 몰래몰래 연애힛지, 연애가 머여? 멋도 모르고 울 영감헌티 속은거지 머.”

그 때는 전주가는 버스 탈라면 쩌어그 상림리까지 걸으갔어.”

좀 멀어? 그러면 우리 영감이 자전차뒤다가 태우 주기도 허고, 또 내가 혼자 밭 매고 있으먼 와서 괭이로 후딱 갈어주기도 허고 그릿지, 하이고 부모님헌티 걸릴까봐서 조마조마힛어.”

젊은 냥반이 어찌케 혼자 살어? 나이 들수록 남자는 여자를 품고 자야 건강헌 뵙이여.” “우리 교회 나와, 미화도 혼자 사는디 어띃게 한 번 같이 잘 좀 허먼 좋긋그만서도이

여그 부락 노인네들도 최근 몇 년 새 혼자 된 분들 천지여, 나도 얼매 안 남읏네 그려.”

세상에나 70년 전 앳된 소녀적 풋풋한 연애기를 어제인 듯 명징허게 풀어내시니 김유정의 봄봄봄을 오디오북으로 듣는 듯 현묘한 기시감이 맥동한다.

앗따 감사혀요 어머니 느을 건강허시고 또 아버지는 더 좋은 곳에 잘 계시니까 적적해하시지 마시고요, 누구나 다 좋은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게요.”

초남이성지 갈 때 느을 지나친게요 옴서감서 인사드릴게요.”

안방에 가족사진을 보니 고인이신 아버지 인상이 낯설지 않다. 하기사 나도 이서에서의 삶이 20년이 넘었으니 한 번 이상 스쳐 지나간 인연이 있을 것이다.

 

 

 

 

쌈장에 찍으먹으라고 포기배차를 안겨주싯는디 시상에나 신문지가 1995년 세로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