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만봤지 특별한 뭐가 있을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산이라 하기엔 낮고 언덕이라 하기엔 높고, 계곡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산으로 보였다. 기껏해야 등산로에 약수터, 운동기구 등속이나 있겠지. 벙커에 사람이 한산해진 틈을 타 잠시 뒷산으로 산책이나 해 볼까, 등산로를 탄다. 금세 꼭대기겠지,했는데 등산로는 나선형으로 겹겹이 이어지고 정산은 삼림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그만 내려갈까? 아냐 지가 높아봐야 얼마나 높겠어. 계속 오른다. 작정하고 나선 길이 아니니 깜냥 코오-쓰가 나온다. 휴일에 화창한 날인데도 오가는 이는 드물다. 30여분 지났을까, 정상 언저리다. 넓직한 공터에 운동기구, 정자, 공중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평화동쪽으로만 조망이 가능하다. 느을 보는 평화동인데 높은 위치에서 내려보니 색다르다. 살짝 객창감도 너울댄다. 용두봉, 장군봉, 옥녀봉 표지판을 따라 조금 더 오른다. 금세 옥녀봉이다. 뾰족한 정상이 아닌 넉넉한 정상이다. 사방 10여터 넓이로 마사토가 깔려있다. 노인 두어 분이 맨발로 제자리걸음 중이다. 키 작은 노송이 어깨와 팔인 듯 가지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홍규 화백이 좋아하는 그야말로 실경산수화다. 장군봉 표지판을 보니 이 곳이 정상은 아니다. 50여미터나 될까, 짧지만 가파른 계단을 조금 더 오른다. 드디어 완산의 정상, 장군봉이다. 2층 높이의 한옥식 정자다. 1970년 정초다. 현액은 1971년 신해년이다. 한자이름을 하나하나 톺는다. 알 만한 분은 없는 걸로 봐서 지역유지들의 희사로 지어진 정자다. 멀리 모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주쪽으로는 대우빌딩과 홈프러스, 개발이 중단된 종광대, 지평끝으로 완주 구봉산 일대도 조망된다. 정자를 에워싸고 있는 노송이 예사가 아니다. 개개 노송별로 영이 서려있어 보인다. 솔잎을 코에 댄다. 천연 휘튼치드다. 솔향이 살아있다. 용두봉 쪽으로 방향을 튼다. 잠시 후 금송아지 바위도 어루만진다. 낙엽에서도 살짝살짝 미끌린다.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다. 돌무더기에도 가일석, 무지성으로 기복을 염원한다. 연리지도 쓰다듬고 삭은가지는 털어낸다. 군데군데 오솔길의 흔적이 사라져 살짝 긴장한다. 이내 좋은교회 첨탐과 용머리고개에 다다른다. 용머리로 맞은편 산자락에 강당3길 부락이 한눈에 펼쳐진다. 저 곳 중 한 곳에 나의 집은 없을까. 420년 전통의 기령당이 웅숭깊다. 기령당 뒷마당에 노송도 예사가 아니다. 잠시 들어가까,했지만 잠겨있다. 터덕터덕 걸어 태화청학아파트를 지나친다. 언덕을 파고 지은 아파트다. 분리수거함 쓰레기를 놔 두고 할머니 두 분이 실갱이 중이다. “여그서 뛰석거리지 마. 내가 아침마다 정리허고 있어.” “하이고 내가 먼 박스를 가지간다고 그리싸, 참말로 먹고 사는 냥반이 왜 그런디야.” 박스 몇 장을 실은 유모차를 끌고 초록색 대문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몇발짝 떨어져 무심한 척 먼 산만 바라본다. 암초록빛 이끼로 발효된 브로꾸담벼락 위 암갈색 고양이가 재빠르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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