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마을 빈집
틀이 있어 보이는 소박한 집이다.
처음 인지한 때가 언제인지 모르나 근 20년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잡초와 관목, 돌담으로 우거져 계절에 따라 비치기도 하고 감춰지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이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너진 대문을 들어서니 뒤아니는 물론 앞마당에도 대숲이 펼쳐진다.
폐가후 생긴건지 모르겠으나 마당 한켠에도 대숲이 있으니 한층 오롯이 보인다.
살던 고양이는 심심하지 않았겠다.
여름날 말캉에서 듣는 빗방울소리도 더욱 선연했겠고.
부서진 방문 너머 켜켜이 먼지 쌓인 안방은 쑥대와 대나무로 볕이 차단돼 한낮임에도 침침하다.
반닫이 서랍 여기저기에 대입 영어참고서, 시사영어책자, 국회보, 편지지가 나뒹굴고 1964~1966년 사이에 펴낸 사상계가 여러 권 보인다.
사회비평서적으로 발행부수가 10,000권 정도면 지금에 비추어도 적지 않은 수치나 농촌에서 그것도 옆마을 빈집에서 사상계를 보니 더욱 각별해진다.
65년도 영어참고서 앞면에는 전주고등학교 최명*호가 적혀있다.
지금은 70세 정도 되었겠다.
사상계는 최명*가 읽었을까, 아니면 아버지가 읽었을까?
고교생한테는 뻑뻑해 보이는 논술참고서, 영어잡지를 보니 최명*는 상당히 우등생였을 것이고 당시 4·19의거, 한일국교정상화반대데모에 고교생도 참여했던 사회적 열기로 보면 전고생 최명*도 사상계를 읽었을 것이다.
옆방에는 괘종시계가 시계판과 본체가 분리된 채 벽면에 기대져 있고 바닥의 대두병 2개는 꼿꼿하며 그 옆 새농민의 뒷표지는 96년도로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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