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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은 다음날(book)

그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북한을 배경으로 한 작품, 혹은 월북작가를 포함한 북한문인이 쓴 북한문학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올 것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말은 생경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지정학적으로는 한반도의 절반을, 인구로는 2/5를 점유하고 있으니 북한은 이방인이 아닌 우리이며, 담론이기 이전에 당위이다

그러함에도 아직까지도 북한문학은 접근이 쉽지 않으나 50. 7월부터 9월까지 두어 달간 출몰했던 소위 人共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서가에서 접할 수 있으니 5년 전에 읽었던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와 이번에 읽은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들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개인이 도저히 어찌 해 볼 수 없는 전쟁이라는 크나큰 파고앞에서 시민은 어떻게 휘말려가며 극한상황에서 생존은 어떠했는지, 햇볕조차 바람 한줄기조차 통하지 않을 심연의 기저에는 어떤 의식이 삼투압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역사 앞에서>는 면면이 관찰자의 관점이 흐르는 작품으로 김성칠의 일기를 바탕으로 출판되었다.

한 예로 인민군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을 얘기한 대목을 들어보면 김성칠은 여기서 본 인민군들도 모두 행동거지가 단아하고 정중하여, 이즈음 늘 갖는 느낌이지만 인민군은 질이 좋고 훈련이 잘 되어 있다.’고 기술하였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작가와 작가의 가족들의 생존기를 놀라우리만치 생생한 기억에 의존해서 풀어낸 작품으로 인민군에 대한 단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역시 흥미롭다

너 무슨 일을 당한건 아니겠지? 당하긴 무슨일을 당해요.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걱정도 안한 게야. 나도 그 사람이 인민군이 아니고 국군이나 미군이었으면 너 안 내놨다. 내가 대신 갔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나온 삶조차도 사실보다는 상상의 영역이 점점 커지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 본 박완서의 기억에 바탕을 둔 작가적 상상력은 너무나 생생하여 나조차 박완서의 셋방식구가 되어 1952년 한겨울의 삼선동 시장길을 부유하는 미몽속에서 아득해지고 만다

 

<메모한 글귀들>

영천시장 한귀퉁이에 제법 시장까지 선다고 했다. 아무리 공화국의 하늘 아래라 해도 사람사는 세상인 이상 먹어야 사는 것 다음으로 참을 수 없는 것이 사고 파는 일이다

機銃掃射

이불속에서 구들목의 식어가는 온기를 아쉬워하며 나만의 생각에 침잠할 수 있는 달디단 시간이었다

깃대빼기에 태극기가 오른 날, 우리는 신임장이나 식권을 잘게잘게 찢어 불아궁이에 던졌다

자유를 실감할 능력보다는 두려워하는 눈치만 발달해 우리는 한없이 비겁하고 졸렬해져 있었다

하늘하늘한 조젯치마

부산 대구 피난살이이 고달픔이 유행가 자락에 매달려 천년을 읊어댄대도 어찌 서울살이의 서러움에 미칠 수 있겠는가?

민어매운탕, 한과, 매잣과

姉妹茶菓店, 死者, 腐爛

우리는 둘러앉아 사랑하는 가족이 숨 끊어진 지 하루도 되기 전에 단지 썩을 것을 염려하여 내다버린 인간들답게, 팥죽을 단지 쉴까 봐 이귀아귀 먹기 시작했다

피엑스걸, 人造絹

점잖은 댁 따님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소개받을 때부터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들을 정도였으니까. 아무집에서나 서울대 보낼 수 있는게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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