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정지 문종안이 딸
세 살 때 소경되어 스물일곱살 먹어도 누가 데려가야지
늘 툇마루 걸레질이나 하며 늙은 부모 굽은 허리로 일 나가면 집이나 보는데
볼 것도 없는 집이나 보는데
그런 때 짓궂은 아이들 풍뎅이 잡아다 떡 하나 줄게 입 벌려봐하고 풍뎅이 넣고 도망친다
또 그런 때 짓궂은 동네어른 스며들어와 앞 못 보는 분례 슬슬 건드린다
어찌 이렇게 잘도 생겼어 하고 젖가슴에 손 넣어 지랄하고 치맛단 들춰보다가 그것만은 찔끔 막는다
하지만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그런 짓 저런 짓 견디며 고요하다
그런 어른 그런 짐승 정신 차리고 돌아가면 그때서야 혼자 눈물 흘린다
소경 눈에도 눈물 있어 눈물 한 방울 흘린다
거미 내려와 곧은 거미줄 끝에 매달려 꼼짝하지 않는다
정두 어머니
밭 가는 날 쟁기꾼 품 사 밭 가는 날
일찍이 면장 마누라로 여기저기 대접도 받았지만 동네에서 늘 수더분하고 잔정 있다
쟁기꾼 점심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곱게 곱게 빗은 머리에 왕굴 똬리 받쳐 이고 나온다
쟁기꾼 밥 먹을 때도 이 갈치 맛 좀 보시어라우 이 겉절이 맛 좀 보시어라우
볕 가득한 좋은 날 하늘 아래 밭두렁
밭 간 데 새 흙 뒤집어 나와 세상 바람 쏘이는데
묻혀 있던 굼벵이도 나와 엉금대는데
가는베 적삼 밑 고운 살결 고요하구나 고요 고요 숨쉬는구나
미제 선술집
미제 미룡초등학교 앞
삐쩍 마른 이발소 아저씨하고 이따금 토닥거리는 이발소 옆댕이 선술집 주인 운심이
눈썹은 그린 눈썹이요
분 아끼느라 어제 바른 얼굴 오늘까지 쓰는 얼굴이라
술 한 사발 달라 하면 그것하고 달랑 새우젓 한 가지라
이게 어찌 술안준가 하면 안주야 내낯바닥이 안주지
어찌 새우젓을 안주로 삼으러 드노 한다
아니 임자가 안주라면 어찌 낯바닥뿐이여
아예 속중의 벌려 그것 더듬어 성나야 안주지
한 잔 더 부어 목 타 하면
흥 대낮에도 눈도 코도 없는 것 달려 속깨나 상하겠네 그 양반하구서는
멀리 수레깃들 강쇠바람에 하늘 심란하고
가까이 진풍수네 집 빨래 자지러지게 펄럭이는데
희자
기명 치고 난 젖은 손 그대로 어둑발 오리나무 숲으로 가 실컷 울고 나면
죽은 어머니 얼굴 나온다 하늘에 별씨 뿌려 별 나온다
채순이
복순이 막내동생 채순이
재남이 아저씨네 목단꽃 한 송이 꺾어왔다가 이년아 우리집에 꽃은 무슨 놈의 꽃이여
훔쳐오려면 쌀 한 되 훔쳐오지
하고 그 꽃 수채구멍에 내버리는 채순이 어머니도 어머니려니와
마당에 두 발 뻗고 목단꽃 버렸다고 징징 짜던 채순이
6.25뒤 비행장 근처 양공주 되어 꽃 수놓인 옷 실컷 입었다
아버지는 부역자로 죽고 그 어머니도 죽고 밥하면 그 밥에 돌이 많던 채순이
모란꽃 피어나 이울 때면 후끈 바람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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