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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otorbike(체게바라처럼)

새북 곰티재로 히서 한바리, 효성스즈끼 GSX250E 오도메다 34,700K



폭염이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니 새북밖에 없다. 다삿시경 출발할까 했지만 너무 시컴히서 딱 야삿시에 출발헌다. 새북이라도 수은주는 30도에 육박헌다. 니미 먼날이 이려? 그리도 밤새 등가죽이 종오떼기 마룻바닥에 쩌억 달라붙던 재작년 세종의 여름에 비허면야 올여름은 그나마 낫다. 전주시내를 서에서 동으로 대충 5분만에 관통허고 금상부락을 지나 동으로 동으로 진안쪽으로 80~90 정도로 정속주행하여 곰티재 아랫마을에 도착허니 야삿시 반이다. 군데군데 새로깔린 쇄석때문일까, 아니면 뒷타이야 지문이 닳아져서일까, 설마 기력이 쇠진히져서 그런건 아닐테고, 작년 재작년에 비해 한결 조심조심 느릿느릿 올라간다. 임진난에 일본놈들이 전주성으로 진격헐 때도 넘던 천년고개 곰티재라고는 하나 군데군데 발파의 흔적이 있는걸로 봐서는 이 또한 일본놈들이 뚫은 고개일 것이고 그 이전엔 포도시 사람이나 말만 지나댕겼을 것이다. 1972년 모래재 개통전까진 전주와 동부산악을 잇던 유일한 국도였다니 대체 어떻게 이런 길을 직행버스가 오르내렸을까. 고개 정상의 웅치전적비 표지판 아래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며 엔젤리너스 사약크피를 한 병 찌크린다










 1972년 모래재 개통전까진 전주와 동부산악을 잇던 유일한 국도였다니 대체 어떻게 이런 길을 직행버스가 오르내렸을까.




고개 정상의 웅치전적비 표지판 아래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며 엔젤리너스 사약크피를 한 병 찌크린다





































1972년 모래재 개통전까진 전주와 동부산악을 잇던 유일한 국도였다니

 대체 어떻게 이런 길을 직행버스가 오르내렸을까.







고개 정상의 웅치전적비 표지판 아래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며 엔젤리너스 사약크피를 한 병 찌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