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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1948년에 지어진, 세월에 발효되어가고 있는 어느 민가

 

 김제역사 바로 옆은 역무원 관사, 화물창고 등으로 쓰였던, 시커멓게 세월에 그을린 듯한 적산가옥이 지금도 남아 있고, 역사에서 김제향교까지 이어지는 이면도로(구본정통)에는 지금도 일식가옥이 군데군데 망울져 있다. 사진속의 오래된 가옥은 김제역사 앞 대로를 건너 왼편으로 조금 휘어져 들어가 있는 동네의 한 주택으로 1949년에 지어졌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에서 볼 수 있는 반질반질한 굉은 없으되 한눈에도 왠지 모를 쓸쓸한 그림자가 느껴지는 그런 집이다. 녹슨 못구녁이 숭숭 뚫린 키작은 나무대문은 대문이라기보다는 1949년 이전 세월과 1949년 이후 세월을 경계 짓는 하나의 상징으로 보여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뜻 모를 심연에 빠져들고야 만다.


 

 

 

 

 

 

 

 

흙으로 반죽한 처마이기에 매년 봄이면 작년의 제비가 지지배배 왕성하게 찾아들어야 하나 사람이 살지 않으니 제비집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처량한 처마는 끝내 눈물인양 뚝뚝 흙을 떨어뜨리고 만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 가장 먼저 창궐하는 것은 쑥대다. 한해살이 제생을 다한 쑥대이건만 쑥향은 여전하다. 파랗게 지붕은 개량했으되 퇴락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내남없이 초가집이던 60년전의 시골마을에 이정도 규모의 집이라면, 더군다나 사회질서가 왜정 때보다 훨씬 못 하다는 광복 직후의 시기에 이정도 집을 지었다는 사실이, 당시 집주인의 재력이 흥미롭기도 하다.

 

 

 

 

흙으로 되어 있던 부엌을 70년대 어느날 합판으로 덧댄 후 주방으로 리모델링했을 것이다. 바로 옆 욕실은 70평형 아파트의 그것보다 더 광활한 크기다. 오른편 안방 한켠에는 코닥인화지의 빛바랜 스냅사진들을 옹기종기 배열시킨 사진액자가 놓여져 있었다. 빨간색에서 주황색으로 퇴색해 가고 있는 촬영일자는 주로 90년대 어느날이다.


 

 

 

동행한 집주인 형님이 지난 여름에 걸어둔 주황색 마라톤복과 붉은색 츄리닝 바지.

안방에서 바라 본 빨래줄 옆 조명등은 유난히 그림자가 져 보인다. 눈으로 보는 빛은 우윳빛이되 마음으로 느끼는 빛은 검기만 하다. 주인이 떠난지 오랜 세월에 조명조차 그림자가 진 것이다. 분명 같은 시기에 같은 재료에 일시에 지어진 콩크리트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윤택한 빛의 질감이다. 빛조차 굉이 박혀 보인다.

 

 

 

 

줄이 드리워진 추억의 조명등.

 ‘일어나야 한다. 저불을 끄기 위해 한번은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