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먼바람이 불었는지 서랍속에서 2년여 넘게 잠자던 문화상품권을 꺼냈습니다. 아니 정리하다보니 문화상품권이 나왔지요. 요걸로 뭣을 헐까, 지역에서 볼만한 문화공연으로 머가 있는지 검색에 검색이 이어지니 군산에는 사람세상소극장이 있고 마침 용띠위에 개띠를 공연중이군요. 한데 인터넷 예매가 안 되니 이서에서 군산 한길문고까지 왕복 80k를 오도바이로 가서 표를 끊었어요. 컴퓨터체가 아닌 손으로 쓴 좌석번호 가-17, 가-18이 왜 이리 정겹던지요, 그시절 낯선 터미널에서 표를 끊고 직행버스을 기다리던 객창감과 설렘의 신묘한 조합이랄까, 모처럼의 색다름에 한껏 고무되었습니다. 다음날 오후 나운동 본정통에서 언덕쪽으로 이면도로 초입에 있는 사람세상소극장을 찾았어요. 입구에서 표를 받으시는 추감독님 말씀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잉? 좌석번호가 있는데 편한자리???‘ 지하 소극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는 그시절 지하다방의 감성 그대롭니다. 30~40석 규모의 소극장은 앞줄 좌석에서 발을 뻗으면 바로 무대에 닿을 정도로 오밀조밀했고 벽면에 붙은 계란판도 골계미 충만한 정경이었어요. 공연 중 “사랑하니까 내기하지 사랑하지 않으면 하겠냐”라는 견숙이의 말이 어록입니다. 돈이 아닌 사람을 거는 내기야말로 일생일대의 내기요, 운명이겠죠. 과연 그렇구나 그렇겠구나... 무대가 전환될 때마다 칠흑속에서 두두둑 움직이는 발걸음도 멋진 배경음입니다. 시골집 고양이들이 모든 잠든 새북마다 지들끼리 먼 재밌는 일이 있는지 우당탕당 거실에서 축제를 벌이곤 했는데 딱 그 소리였어요. 인간과 동물을 아우르는 살아있음류의 원초적 고동감을 이리도 명징허게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요... 어쩌면 사람세상은 수십년간 지연된 필연일지도 모르겠어요. 또 지견숙, 나용두 두 인물의 지극히 일상적인 궁합도 별사탕마냥 즐거웠습니다. 1시간 20분간의 공연동안 사람세상과 두 분의 연기는 유전자 깊이 각인되었으니 훗날 누군가에게 이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또한 지연된 필연이자 행복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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