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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fractal)

새벽의 땅 부여 낙화암을 살펴 보다

 

새벽의 땅 부여 낙화암을 살펴 보다


부여는 옛 사비성으로서 낙화암 일대의 고목, 정림사지터를 제외하면 시내에서 백제 수도로서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소한 궁터라도 남아있어야 할 텐데 아무것도 없다. 그만큼 신라와 당에 의한 백제 파괴가 철저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시내는 사위가 훤하고 2~3층의 낮은 건물들이 연속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이다. 비록 상해나 교토의 그곳처럼 옛거리의 원형은 아니더라도 시내 자체만으로 이색적이고 예스러웠다. 한국의 발견 ‘충청남도’편을 찾아보니 부여는 일본 고대문화의 원형지로서 일제가 이곳에 거대한 신궁을 계획한 탓으로 그에 맞춰 시가지 정비도 비교적 차분하게 한 결과인 듯 하다. 낙화암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한편으로는 기념품 가게가, 다른 한편으로는 큰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강한 기시감이 머릿속에서 또아리 틀고 있다. 교토시내 어느 언덕에 있는 사찰 진입로와 유사한 구조이다.

 

 

<부여읍내>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읍내’처럼 근대화가 덜 되어 있다.

  <정림사지5층석탑>

정읍, 김제지역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투박한 고려석탑과는 달리 정교하고 웅장했다. 백제정벌 당시 당나라 군사가 새겨 두었다는 ‘大唐平制塔‘은 확인하지 못 했다.

 

 

 

 

 

 

  <낙화암에서>

당과 신라의 군사들이 사비성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광경을 바로 이곳 낙화암에서 삼천궁녀들은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읍내에서는 거대한 연기구름과 함께 남자들은 도륙당하고 여자들은 능욕당하고 있는 단말마의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 낙화암은 백마강으로 막혀 있는 막다른 곳이다. 뛰어내리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저 멀리에서는 목하 ‘4대강’정비중이다. 먼 생태공원 혹은 테마파크를 조성중인 듯 보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를 배웠던 나로서는 테마파크 등의 인위적인 난리법석은 아조 질색이다. 강변을 강변 그대로 볼 순 없을까? 삼천궁녀의 원혼들도 까무러칠 일이다.

 

 

 

  <고란사에서>

고란사 바로앞에는 선착장이 있다. 과거에는 나루터였다. 부여 사람보다는 장날에 맞춰 인근지역에서 내방허는 불자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50년간 일해 오신 선장님에 의하면 각종 다리가 놓이기 전인 60~70년대까지만 해도 나루터는 통학하는 학생, 장꾼들로 인산인해였다 한다. 바로 앞 테마파크가 완공되면 부여군수가 바라는 대로 연간 ‘500만명’이 찾아들어 백제의 중흥을 재연할 수 있을까?

 

 

 

 <고란사 마당에서>

양갈래 사이로 다른 수종이 움트고 있는 중이다. 무릇 갈라지는 곳은 생명의 욕구가 왕성하다.

 

 

 

 

 

 

 

 

 <부소산성변 폐사지>

폐사지를 둘러싼 고목들이 맹글어 내는 그늘이 한층 윤기있어 보인다. 이곳에서 낮잠 잔다보면 언젠가 삼천궁녀의 원혼들과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連理枝>

지독헌 사랑의 결과물인가? 아니면 일단 연리헌 후 세월에 의해 깊게 발효한 정의 표상인가?

 

 

 

 <갑옷>

부소산성 능선에서는 키다리 소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금강 깊숙이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한 많은 역사가 만들어 낸 표상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