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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완주군(이서면) 이모저모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하나 되는 날(완주군 이서면 마을지)

<완주혁신도시로 사라져 버린 마을들의 민속>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하나 되는 날(완주군 이서면 마을지)

 

동박 : 밀양박 (원갈산)

서윤 : 용서리, 모고지마을

남송 : 원이성, 황새골

북류 : 원동, 반교, 초남이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곳 이서면내, 동서남북 4대 권역별로 성씨분포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지리, 역사 부도를 통해 시대별 나라분포는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으나 내가 사는 곳, 자연부락에 이런 경계가 있을 줄이야...


 모고지마을, 용서리에 윤씨가 많은 건 익히 아는 사실이었고 원동, 초남이의 류씨는 짐작헐 수 있으며, 이성리 일대의 송씨는 당장 이번 주말에라도 확인해 볼 터이나, 혁신도시로 인해 흔적없이 사라진 동쪽지역 갈산리 일대 박씨일가는 더 이상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아쉽고 애틋허다.


<옥정마을>

2년전 겨울 어느 날  유심히 살피고 곳곳을 찍어뒀던 옥정리(지기동)은 역시 남달리 ‘굉’이 백힌 부락이다.

옥정마을에는 율(律)끼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고 그들의 자손들도 그 피를 이어 받아 대대로 잘 친다. 그렇게 예전에는 모심는 소리, 논 미는 소리허는 사람들이 있었는디 지금은 다 돌아가셨다 한다. 또 옥정마을엔 당골이 한명 있었다. 그렇게 옥정마을은 원래 풍물이 억셌다.


지금 60~70대가 된 이 일대 초로의 할머니들이 처녀일 때 결혼식은 객사 뒤 ‘신혼예식장’이서 많이들 했다. 출산은 산부인과에서 하기 보다는 집에서들 하는데 태반은 가위를 물에 끓여 잘랐으나 이로 끊기도 한다. 태반은 잘 말려 인근 약방이서 환으로 맹글어 먹기도 한다.


옥정에 마을 공동의 꽃상여를 보관해 두고 인근 마을에까지 빌려준다. 상여꾼에게는  따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삼일상을 치루고 난 뒤 다 같이 밥을 차려준다. 그러다가 언제부터는 수건을 돌리고, 또 하얀 고무신을 한컬레씩 돌린기도 한다.



<원갈산 마을>

특히 (일제때) 금촌이, 세천이 땅이 8/10이다.

*금촌이(今村, 이마무라), 세천이(細川, 호소가와), 우근이(우콘이, 右近)

 그 때 말 안 듣는 놈(자식)에겐 우큰이 농장답 댓마지기 딸려 제금보낸다고 겁 주기도 한다. 그때는 한마지기에 열닷말 먹는디 지금은 세가마 정도 먹는다. 소작료는 열 말 정도였고 가을엔 사음이 와 ‘관평’을 한다.


<신풍마을>

현재 70대의 할머니까지만 해도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빨래를 한다. 특히 고된 시집살이 허면 겨율철 빨래가 가장 큰 곤욕이다. 온가족 옷을 다 뜯어서 빨고 다시 바느질하고...


<후농부락, 厚生農園>

전답이 없는 경상도 출신의 귀국동포, 만주에서 돌아 온 귀국 동포, 6.25 피난민들의 집단 취락지로서 후농 1동이서 5동까지 총 5개 부락으로 구성되고 1동당 20가구씩 총 100가구가 거주한다. 이 마을은 형성 초기인 1949년부터 애시당초 마을제사와 같은 신앙은 없고 마을입구에 장승, 고목은 물론 산신제도 없다. 또 물이 귀한 동네다. 우물자리를 알려 준 지관은 ‘엘로드’를 사용허지 않는다. 우물 팔 날이 되면 지관이 알려준 자리에 조그만 술상을 차린 후 간단한 예를 올린 후 땅을 파면 틀림없이 물이 용솟음친다. 자유당 말기 10여가구의 낙농가가 유입되어 자전거로 전주 축협까지 원유를 실어 나른다. 낙농은 1987년 소값 파동전까지 이어진다. 쌀이 귀한 시절엔 밭에  조(서속)을 심기도 한다.

이서교회는 1954년 흙벽에 루핑지붕을 얹어 시작한다. 1981년에는 이서제일교회로 제금나가며 2001년부터 ‘하섬원’밑에 노인복지센터도 운영중이다.  버스는 1945년부터 댕기기 시작했다.


<오공마을(蜈蚣,지네)>

6월 말 모내기가 끝나면 보름 간격으로 초벌매기, 두벌매기, 민두레 세 번 김을 맨다. 5.16전까지만 해도 두레가 활발했는데 이후 가구별로 소득에 집착하는 풍토가 번지기 시작한다. 소 한 마리는 닷새 품에 해당한다. 오공마을은 100 여 호가 살고 머슴을 둔 집이 10 여 호 정도 된다. 경상도에서 머슴 살러 오기도 한다. 쟁기질까지 가능하면 상머슴이다. 오공이서 전주 남부시장까지는 8km 정도인데 현재 도청 못 미쳐 ‘바우백이(홍산)’에는 1960년대까지 양조장 겸 주막이 있어 쉬어가곤 한다.

 

<옥정마을(지기동) 입구>

이젠 자취조차 찾을길 없다...

 

 

<옥정동의 어느 헐리기 직전 가옥>

 

 

 

 

<이서면 신택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