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평장날
셀버튼을 누르고 아파트 진출입로를 나서면서도 변산으로 틀지, 원평으로 틀지 머릿속은 갈팡질팡허다. 서녘햇살이 강렬해선가, 혹은 급핸들 꺽기가 저어해서인가 자연스럽게 원평쪽으로 핸들이 돌아간다. 목하 햇볕은 초속 300m의 속도로 부안 앞바다쪽으로 넘어가고 있고 바람은 초속 30km의 속도로 가을안으로 깊어지고 있다. 구암부락을 지나자마자 오른편 논 한가운데 남봉마냥 우뚝 솟은, 굳이 말하자면 산이지만 모습은 거대한 바위같은, 언덕우그 소나무 몇그루에서 솔향이, 두월천 다리건너 논둑에선 들깻내가, 금구를 지나 서도리앞 신작로에선 고구마내가 느껴진다.
원평을 가로지른다. 원평장날임을 알고 있지만 다삿시가 넘어가서인가? 장날이라 하기에는 괴괴한 느낌하다. 도로변에서는 의류행상 두어대가 철시중이다. 금산농협에서 멈춘다. 하이바 벗기랴, 색안경을 안경으로 바꾸랴, 장잡 및 자켓 벗으랴, 이것을 다시 하이바안에 구겨 넣고 하이바고리에 걸쳐두랴...주행 중 멈추고 잠시 휴식헌다는건 성가신 일이건만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허물 벗는 마음으로 이륜자 운전자에서 보행자로의 의식을 수행한다.
원평장터를 걷는다. 입구에서는 할매 두엇이 콩, 파, 늙은외 등을 보자기 혹은 신문지 위에 펼쳐둔 채 지나가던 할아버지와 흥정 중이다. “이까짓거 돈 천원어치 가지고 무슨 영화를 누리것다고...” 시골어매의 억양이다. 그 어느 영화에서, 드라마에서건 들을 수 없는, 오직 길가시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말투다. 50미터 정도 들어가니 지어진지 15~20년쯤 되어보이는 나름 근대화되어 보이는 장옥이 눈에 들어온다.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철시중인 상인 몇만 보인다. 장옥 중간통로엔 목하 노인네들의 지전판이 벌어지고 있다. 아메바형태의 원평시장 구조는 바람길도 아메바모양으로 연하게 휘오리치게 맹근다. 신발가게를 거쳐 온 바람은 플라스틱내, 혹은 레자내를 머금고 있어서일까, 고스톱판의 노인들에게 그나마 장날의 냄새를 전달해 주고 있다.
금산농협 마당한구석 컨테이너 건물에 기거허는 아저씨가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오늘 보니 장터로 거처를 옮기셨나 보다. 아저씨는 나무의자에 앉아 10년 넘게 살아온 흰둥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강아지는 새끼 8마리에게 젖을 빼앗긴 직후라 가픈숨을 쉬고 있으며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뼈가 결리는 소리도 들린다. 수년만에 보는 백구지만 나를 아는 듯 심드렁하게 눈만 껌벅일 뿐이다.
목하 연근, 토란, 호박, 들깨말리기가 한창이다.
주행 5천키로밖에 되지 않는 효성어드밴스가 이곳에서 멈춰진걸 본지도 근 5년은 된 거 같다.
한적한 원평장터
느릿느릿... 시간이 멈춰버린 원평 본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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