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8일 토요일 이른 아침 빵과 크피를 찾아 강진차부앞 이곳저곳을 살핀다. 신선함에 있어서는 머니머니히도 편의점을 따라 올 수 없기 차부건너편 모시기편의점에서 빵 한봉지와 테이크아웃형 크피 한잔을 산다. 낱전이 나오지않게 가격표를 꼼꼼히 살펴 선택힛건만 계산대에서는 낱전이 나온다. 10여분 휴식후 서둘러 집으로 튼다. 오른편에 옥정호를 끼고 산내면 방향으로 달리는내내 왼편산에 가린 아침해는 서광이 되었는가 시시각각 빛의 농도를 달리하니 왼전경이 움직이는 수묵화다. 구절초 고개를 넘어 칠보로 접어드니 여름은 여름이라 해가 중천에 가까워질 기세로 이글거릴 조짐을 보인다. 옹동면소를 지나 칠석리앞 지방도 양옆은 키 큰 쑤시, 해바라기, 코스모스가 도열해 있어 길 바깥쪽은 보이지 않는다. 흡사 작물로 담장을 두른 느낌이랄까... 굳이 특별할 것 없는 시골길이지만 길옆 작물들이 유난히 거대해 보였던 건 뜬금없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축생 때문이다. 축생은 다름아닌 고라니다. 고라니 한 마리가 사나워 보이는 갈짓자 뜀박질로 횡단하는 모습에 머릿속이 공허해지는가 싶더니 또 한 마리가 튀어나와 800이의 옆구리에 충격을 가한다. 넘어지는 건 순간이지만 미끌리는건 순간이 아니다. 여백이 된 머리안으로 누리끼리한 세상이 폭포수처럼 들이닥친다. 그리서 황천길이라고 하는가? 가죽자켓 왼쪽 어깨죽지는 아스팔트 회산물로 긁힌 나머지 양장피외피가 벗겨지고 하이바 한쪽 귀퉁이에도 빗살무늬가 다중으로 새겨진다. 닥터마틴 부츠는 앞코박이에 빵꾸가 나며 사슴가죽장갑도 부분부분 구녁이 뚫린다. 라이딩전용 청바지만 입었어도 다칠 일이 전혀 없을 터인데 하필 일반 청바지이다 보니 무릎부분 천이 찢겨나감과 동시에 무릎살점도 뼈가 보일 지경으로 떨어져 나간다. 바이크에 눌려서 미끌리는 바람에 더욱 상처가 깊다. 무릎을 제외하고는 다행이 신체상해는 없다. 순간 엔진가드를 했으면 좀 덜하지 않았을까 허는 생각도 스친다. 출혈은 많지 않고 그다지 통증도 모르겠다. 오른쪽 발목은 바이크에 눌려 있어 여러 차례 안간힘을 다해 빼 낸다. 누가 볼 새라 후딱 일으켜세우야는디 육중한 800이는 꿈쩍도 않는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될 것도 같은디 딱 힘의 경계점만 느껴질 뿐이다. 방법을 달리하여 유투브에서 본대로 핸들을 잡고 꺾어올리니 의외로 쉽게 세워진다. 이제 길가시로 끄시내야느디 이미 다리힘이 풀려있어 끙끙대고 있다. 차량 두 대가 차창밖으로 빼꼼히 귀경허는가 싶더니 이내 지나친다. 길가시 오른편 풀숲을 보니 바이크를 충격한 고라니가 널부러진채 경련중이다. 일단 정읍시를 통해 동물구조센터의 수의사에게 고라니의 위치를 확인시켜 준다. 기아레바가 안쪽으로 함몰되어 있으니 중립잡기가 쉽지 않다. 멫번 앞뒤로 움직여 중립에 맞추고 시동을 건다. 1단으로 천천히 천천히 옹동면사무소쪽으로 이동한다.
팔백이는 안전바이크로 이송시키고 나는 아파트에서 점심 후 조이스틱으로 뜻하지 않게 병원순례에 들어간다. 우리들정형외과, 다음병원, 전주병원을 경유하여 결국 전북대병원 응급실에 안착한다. 먼 보증인이네 머네 히서 입원절차가 껄쩍지근허고 수술대에 오르기 전 다소 번문욕례도 관찰된다. 어찌되었든 그나마 사지를 갱신헐 수 있으니 다행이다. 수술전 MRI네 CT네 히서 뻑적지근허게 방사능세례를 받는다. 한두번에 그치는게 아니라 전후좌우 엎어졌다 뒤집었다 촘촘히 찍는다. 마흔넘게 살아오며 찍힌 방사능보다 이날 하루 찍힌 수치가 훨씬 많지 않을까. 수술은 정형외과 이영근 교수의 집도로 인턴, 간호사 등 4~5명이 한팀이 되어 진행된다. 임시로 감아뒀던 붕대를 띠내고 세척작업에 들어간다. 무통주사도, 마취주사도 없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무한으로 반복된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마냥 미세허게 한기가 오고 왼다리는 3강4저로 파리리 경련이 감지된다. 수술팀 중 누군가 “아버지 떨지마‘”라고 격려해 주며 쉴틈없이 조물딱조물딱 세척중이다. 로스괴기에 골고루 양념을 치고 있는듯한 느낌이랄까, 소독하고 두루두루 휘젖고 물로 씻어내고를 수차례 반복한다. 아스팔트 잔해물로 이물질이 좀 많이 묻었다한다. 고통을 빨리 끝내야만 하므로 살살 허는 것이 능사는 아니란 점을 의료진은 잘 알고 있을게다. 느낌상 한시간에 걸쳐 쉴틈 없이 집도중이다. 순간순간 격심한 고통에 어금니를 악문다. 며칠 지난후에는 혓바늘이 돋고 입술도 부분부분 터져있다. 세척 후 봉합을 마치고 응급병동 6층으로 욂겨진다. 정형외과동은 병실이 부족해 이곳 복도에서 3일을 머무르게 된다. 복도에는 나 말고도 두서너 환자가 유숙중이다. 간호사는 간병인, 혹은 보호자가 없냐 묻는다. 일단 동근이에게 연락허니 야닮시가 다 되어 병원에 도착헌다. 기본적인 세면도구, 속옷 등을 심부름시키고 김밥 한줄로 같이 저녁을 한다. 이런저런 얘기로 적적함과 꺽정스러움을 달래고 동근이는 열시가 넘어 돌아간다. 왼쪽 무릎이 힘의 분배를 끊어버렸기 자력으로는 걸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간호사가 준 빈용기다가 누운채 이불로 가리고 조심스럽게 우줌을 낭창낭창 채운다. 범람헐까 조마조마허며...나는 병상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암것도 모르기 때문일까, 염치가 없어서일까, 간병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죄송하지만 오줌 좀 비워달라니 간호사에게 부탁허라 한다. 그러고보니 아까 빈용기를 건내주면서 오줌을 비워주겠으니 다시 불러달라는 그 간호사는 정말 백의천사이리라...혼자서는 도저히 갱신이 안 되것기에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간병인을 부른다. 67년생 김명이라 하며 진안용담생이라 한다. 사장님이란 호칭에 누나라 호칭허고 편히 보살펴달라 부탁헌다. 간병인누나에게 숟가락, 충전케이블 등을 부탁허고 오줌도 비워낸다. 퇴원 후 진료비내역으로 안 사실이지만 병원밥은 1식당 5~6,000정도다. 균형식으로 깔끔허니 잘 나오고 있으며 일반상식과 특식 중 선택해 먹을 수 있다. 그렇다고 특식이라 하여 흔히 생각하는 특식은 아니며 짬뽕, 짜장면 중 택1 개념으로 보인다. 진통주사제, 혹은 위벽보호주사제 때문인지 식욕은 전혀 없고 오히려 구토증상이 흐멀거리나 어거지로 2/3공기를 비운다. 20대 초반의 어린 간호사에게는 ’아버님‘으로, 심지어는 회진나온 이영근 교수에게도 ’아버지‘로 불리니 심리적으로도 적막해져 간다. 5년전만 히도 30언저리로 알고 있었는디 그새 50언저리로 중늙은이가 되어버렸다. 첫째날밤엔 복도 조명을 야찹게 히 줘서 지낼만 힛는디 둘째날밤엔 먼양계장인가 대낮처럼 환하게 켜 두는 바람에 잠자리가 푸석푸석허다. 참다 못해 간호사에게 “제발 저 형광등 좀 어떻게 히 보라”니 응급병동이라 손댈 수 없다는 심드렁한 대답이다. 살짝 부아가 나면서 머슥해진다. 둘째날 아침엔 명이누나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의지하여 밖으로 나와 출근하는 군상들을 구다본다. 사복을 입고 출근중인 간호사는 일견 째쟁이 오피스걸로 보이며, 어떤 노환자는 억대 밴차량에 의지한채 외출을 서두르고 있다. 또래의 어느 여자는 내다리를 한번, 그리고 전신을 짧게 훑어보더니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잡힌다. 3일간 씻지도 감지도 갈아입지도 못 허고 있으니 그렇잖아도 영양색이 부족해 보이는 몰골이 더욱 추레해 보였으리라...3일째 되던 날 비로소 똥을 싸게 된다. 휠체어에서 변기로 욂겨앉으려 사지를 비트니 왼쪽 다리에 역한 전류가 흐른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굵고 길죽한 배설물을 토해낸다. 명이누나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혼자였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심지어 “바지를 내리고 똥을 싸게 도와주겠다”는 말에 간병인이 얼마나 심든일을 허는 사람인지를 절감헌다. 복도에서 세밤을 유숙후 드디어 입실헌다. 6353호실은 5인실이다. 남지기 네분을 일람히보니 그나마 내가 월등히 젊고 양호해 보인다. 맞은편 왼쪽 환자는 레떼르나이는 60이나 오랜 병상생활때문인지 얼핏 80에 가찹게 보이기까지 한다. 50대 후반의 옆 노신사는 뇌질환과 척추질환의 합병증세로 대학2년생 어린아들의 간병으로 갱신중이며 맞은편 병상의 70대 노인은 15살은 젊어보이는 아내의 간병으로 요양중이다. 맞은편 왼쪽 병상은 50대 초반의 건장한 중년남성인데 아마도 산재후유증으로 입원한 듯 보이며 역시 휠체어로 이동중이긴 하나 갱신은 어느정도 자유로워 보인다. 이환자는 나와 나이차이도 크지 않을뿐더러 내나이 또래의 아내와 이제 초등학교 2년생인 딸과 같이 생활허는 모습이 병실이라는 좁고 부자연스러운 공간속에서 유난히 화목해 보여 몇 번이나 말을 붙여볼까 망설이지만 계제를 찾지 못한다. 어느 작가는 고양이 두 마리만 키워보면 세상을 알 수 있다 했지만 이곳 병실도 또 다른 세상이기에 매시각시각 조용하면서고 치열하게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병실에서 두밤을 보내니 어느새 내집같은 안락함이 들어앉는다. 주말까지는 눌러있고 싶으나 병원측에서는 퇴원을 서두른다. 명이누나는 응급동의 특성상 나같은 환자는 쩐이 안 되니 오래 있을 수 없다한다. 전북대병원에 온지 닷새째인 8. 12일 오전에 퇴원수속을 밟는다. 퍼스트클래스같은 안락침대에 누워 편안한 자세로 오전내내 여유를 부리고 점심 후 퇴원헐 심산이었으나 오전에 들어올 환자가 있다는 말에 먼가에 쫓기듯이 병실을 나와야 했다. 허겁지겁 챙겨 제대로 인사헐 겨를도 없이 1층으로 내려와 일단 수납창구 앞 의자에 세간살이를 내려놓고 한숨을 돌린다. 짐을 챙기다보니 지갑을 잃어버렸다. 아마도 복도에서 유숙헐 때 누눈가 빼간 모양이다. 5만원권만 해도 15장 정도가 들어있을틴디 누군가 요긴허게 쓰길 바랄 뿐이다. 생명을 다투는 곳인디도 병동에는 CCTV가 없다 한다. 지갑은 포기할 수 밖에...명이누나를 시켜 통장에서 150만원을 빼 오게 했으나 ATM기 등록통장이 아니라 하기 다시 도장과 비밀번호를 주고 빼 오게 한다. 또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오토바이 종합보험은 자기신체 사고가 들어있지 않았다. 다행이도 자기과실이 없는 교통사고라서 일반보험을 적용시킨다. 사고경위를 너댓줄 써서 접수계에 주니 10여분 후 승인이 떨어진 모양이다. 자기부담은 40만원 밖에 되지 않지만 큰 금액이고 더군다나 보험적용까지 거부당했다면 아찔할 일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
명이누나 남친의 봉고차라 하길래 먼찬가 했더니 실제 방계봉고라 할 수 있는 기아 뿌레지오다. 웬 남친이냐 물으니 10년도 훨씬 전에 이혼했다 한다. 에야콘도 나오지 않는 봉고 뒷자리에 앉아 2차병원인 전주 한일병원으로 이동한다. 남친이라는 사람은 성질이 조악해 보인다. 앞차가 주차정산대에서 시간을 좀 끄니 여성정산원이 들으라는 듯 이미 출발해버린 앞차 운전자에게 입에 답지 못할 폭언을 쏟아낸다. 이동하는 내내 철 없는 고교생의 그것인 듯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거지들이 매우 생경하다. 같이 즘심이라도 한끄니 헐까 힛으나 지름값 3만을 쥐어주고 서둘러 내린다.
2차병원인 전주한일정형외과는 진찰실, 수술실보다는 흡사 고시원인 듯 좁은 복도를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입원실이 인상적이다. 얼추 한 50여명은 누워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진료비 청구서로 역산해 보니 식대를 포함한 1인당 하루 유숙비는 4~5만원 정도로 하루 병실수입은 대충 200~250만원으로 추산되며 방문환자도 얼추 일 50여명에 매출이 250만원 정도로 한다면 일 매출액은 500만원, 월매출은 1억에서 1.5억 정도 되지 않을까...직원은 청소원, 영양사, 조리사까지 모두 하면 10명에 인건비는 1인당 300씩 잡으면 월 3000정도가 지출될 것이며 기타 임대료, 약값, 부재료비등 인건비를 제외한 모든 운영비도 월 3000을 잡는다면 원장의 월 순수입은 4000에서 최대 9000까지 추정해 본다. 병원측에서는 cd를 가져왔냐 물으며 cd가 없으면 방사능검사를 새칠로 히얀다한다. 물론 가져오지 못 했다. 전북대병원에 문의하니 개인정보 보호땜시 퀵으로 보내줄 순 없으니 직접 내방하여 수령해가라 한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할뿐더러 지칠대로 지친 환자를 오라가라 하니 맥이 풀리는 일이지만 벨 수 없다.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전북대병원 기록실에 간다. 택시 승하차 장소에서 본관동까지 뛰약볕 아래를 한걸응 한걸음 따박따박 정성들여 걸어 기록실에서 cd를 수령한다. 한일병원으로 오니 어느덧 두시가 넘어버린다. 점심은 병원 바로 뒤 의령소바집이서 6,000원짜리를 한그럭 헌다. 요란한 인테리어와는 달리 맛은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3,000원짜리 물국수가 훨씬 맛났는디...세시쯤 진료를 받는다. 원장은 먼 성형수술도 아닌디 먼 무픞을 이리 촘촘허게 쨈볏나며 상처부위를 살핀다. 무릎뒤에 덧댄 아대는 너무 길다며 플러스펜으로 표식을 헌 후 기획실에 넘긴다. 젊은 기획실장은 톱으로 양귀퉁이를 썰어내고 다시 무릎에 덧대준다. 이 또한 퇴원시 진료비 청구서를 보고 안 사실이지만 재료비 자담분으로 히서 10만원이 찍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재료비는 찾들 못 허겠으니 플라스틱아대 톱질비용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이런건 소액이고 부차적인 일이라서 심드렁허게 여기나 병원운영의 한 단면을 추축헐 수 있으니 이 또한 귀중한 세상경험이 아닐 수 없다.
205호실로 들어서니 전북대병원과는 다르게 젊어졌다. 20대가 둘, 30대 하나, 나 포함 40대가 둘이다. 휠체어에 의지허는 축도 있으나 다들 이동도 원활해 보이니 간병인도 없다. 창가에 자리잡은 두 20대 환자는 먼 암코양이마냥 잔뜩 멋을 부린 어린 애인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하루에도 수차례 체킹허고 주사놓는 간호원, 수시로 환자의 배설물을 비워내는 간병인, 이른 새벽 정갈한 백발을 앞세우고 떼를 지어 회진하는 의사들의 모습 등 전북대병원은 권위와 긴장이 느껴지는 모습이었으나, 이 곳 한일병원은 한결 평화롭고 고요하다. 적응만 된다면 장기요양해도 될 터이다. 병원밥은 전북대병원에 비해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나 양념을 더 신경써서 힛는가 더 맛나고 사량이 2/3밖에 안 되어 냄길래야 냄길 수가 없다. 특이하게도 내 옆자리 환자는 나보다 한 살이 많으며 이서 사이버에 거주한다. 간호사는 나와 동갑에 정농에 거주하며 미혼이다. 간호사는 내게 머허는 분이냐 묻지만 보통월급쟁이라 답한다. 이러저러하게 왔다갔다 바깥공기도 쐼서 이틀을 보낸 후 토요일이 광복절이라 전날 미리 퇴원수속을 밟는다. 덕분에 퇴원당일 아침에는 한결 여유롭게 짐도 챙기고 인사도 드리며 집에 올 수 있었다. 집에서 하룻밤 후 거추장스럽던 아대를 띠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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