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콩 (저자 이시백)
홍지서림에 들러 신간소설을 일감허던 중 눈에 번쩍 들어오는 제목이 있었으니...
‘갈보콩!’
언젠가 ‘갈보콩’이 들어간 단편소설을 녹색평론서 봤던 터라 두 번 생각헐 것 웂이 단박에 집어 들었고 책 속의 소제목처럼 ‘몰입’되어서 읽어 나갔다.
저자는 현재 스러져가는 농촌과 마을의 문제를 관제 전문가나 소설가가 아닌, 농민의 시각에서 통쾌허고 적나라허게 파헤치고 있다. 책표지에서 이시백은 야독은 충실허지 못 허고, 주경은 조금 흉내만 내는 수준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나 매 페이지마다 녹아 있는 농촌의 목소리로 판단컨대 삶의 치열성에서 본다면 작가라기보다는 농민이다. 그러기에 소설 갈보콩은 더욱 절절허고 빛이 난다.
먼저 11개의 소제목 중 갈무리해 둔 주요 구절을 옮겨 봤다.
이 책의 제목인 갈보콩의 의미를 작가는 아래처럼 질펀허게 풀어냈다.
“귀 열구 잘 들어. 저만 혼자 토종 콩 심군다구 되는 게 아녀. 벌 나비가 날아 댕기믄서 꽃가루를 묻혀 대는디, 근처에 수입콩 심구는 밭이 가차이 있다구 생각혀 봐. 그 콩이 뭔 콩이 되겄어?”... 中略
이제와 생각해보니, 제 밭의 콩들은 죄다 을석네 미제 콩과 붙어먹어 어디 씨도 모를 화냥질 콩이 된 셈이 아닌가.
- 219p 갈보콩 中-
산업화허고 있는 축산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썩은 소 좋아 허시네. 말 나온 김에 허는 말이지만 아마 텔레비전에 장구네 외양간 비추믄 괜찮을지 몰겄네. 온종일 질척거리는 소똥에 발목 잼그고, 개도 안 먹는 왼갖 쓰레기덜 섞어 멕이구, 아마 외양간 좁아 쓰러질 데가 웂어 서 있는 것이지, 옴나위만 있으믄 죄 자빠져 일어서기 힘들지 싶은디.”
-210p 扶助 중-
농정당국의 즉물적이고, 언발에 오줌누는 격인 영혼 웂는 농촌활성화정책에 대해서는
이 모든게 그 잘난 산촌마을인지 생태마을인지 때문이었다. 처음 면사무소 김주사가 찾아와 ‘물 맑은 메뚜기 마을’인가를 이야기할 때만 해도 또 무슨 귀찮은 일을 시키려나 보다고 시큰둥하니 흘려듣고만 있었다...中略
“그 자부담이란 게 서류 허기 나름이래유. 쓴 걸루 가라 영수증 붙여내믄 되는 거구, 다 나랏돈 받아서 쓰는 거래니께 우리야 밑져야 본전이쥬, 뭐.”...中略
이렇게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가 서로 떠다미는 사이에 면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업계획서를 내라, 사업자 선정을 해라, 집행결의서를 내라고 들볶아대는데 그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 보라며 둘러대기만 했다. ... 中略
그러던 차에 어디서 들었는지 읍내 사거리에서 건축사무소를 벌이고 있는 임 씨네 둘째 아들이 제 머리 둘은 보탬 직한 수박덩이를 들고 찾아왔다.
“이장 어르신은 욤려를 마시래니께유, 이런 일은 즈이가 전문이유.”
- 45p 뭘봐 중-
순수문학이니 참여문학이니 허는 구분은 쌍팔년도 한샘국어에나 나오는 용어 같아서 고리타분허게 생각허고, ‘역사와 사회에 무관심헌 값싼 서정은 사양헌다’는 박남준 시인의 말에 크게 공감허는지라 작게는 ‘착하게살기운동본부’의 면 책임자 자리에서 크게는 FTA로 인한 부의 세계적인 편중현상까지 조목조목 다루고 있는 소설 갈보콩은 농촌사회를 이해허는 최고의 ‘농촌경제’ 교과서다. 게다가 김유정의 ‘봄봄’ 이상의, 별사탕처럼 매 페이지마다 터져나오는 골계미는 자칫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 주제를 전혀 메마르지 않게, 윤기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그 윤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의 농촌보다 소설속의 농촌이 ‘더 살만헌’ 곳으로 느껴지며, 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생생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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