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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은 다음날(book)

내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이문구)

 

 

이문구 작가의  ‘내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는 모두 8개 마을에 각각 자생하는 8종류 나무를 제목으로 하는 8개 소설의 묶음이다.(장평리 찔레나무, 장석리 화살나무, 장천리 소태나무, 장이리 개암나무, 장동리 싸리나무, 장척리 으름나무, 장곡리 고욤나무)

그 나무 한그루 한그루마다 나이테로는 측정할 수 없는 굉이 박혀 있어 작가에게 이들 나무는 배경이 아닌 주제이며, 오히려 걸죽한 입담을 자랑하는 농촌의 이웃들은 양념 같은 존재들이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 주는 고샅, 논밭, 둠벙, 저수지등도 생명의 근본 존재형태인 끈끈한 점액으로 연결되어 있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 사람부터 송아지, 까마귀, 물고기 등은 그 점액을 향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야기는 우루과이 라운드가 쟁점화되기 시작한 90년대 초반부터 IMF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90년대 후반기까지로 지금은 70대가 된 분들이 아직은 쓸 만 하셨던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사람의 이야기는 크게 부각되지 않되, 농민들의, 적확한 국어 맞춤법 규정을 차용할 수 없어 활자화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아니 포기해 버려야 신간이 편한 토속적인 어휘들이, 혹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서 어렴풋이 들은 기억만이 남아있는, 잊혀져가기 직전의 어휘들이 종횡무진 그 점액을 더욱 살아있게 해 준다. 확실히 지금 70대 이상은 사라져 가는 우리농촌의 옛 정취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로 볼 수 있으며, 40~60대는 그 옛 정취로 흠뻑 취해 노회해진 모습으로 이제는 담벽 너머로 스물 스물 멀어지는 구렁이의 뒷 꼬리만 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장동리 싸리나무에서 거실에 드리워진 묵란도를 묘사하는 부분이나, 달빛이 어우러지는 저수지 물김, 물녘, 무서리 등을 묘사한 부분은 이제까지의 그 어떤 문장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초기 생명의 시원과정을 그릇(저수지, 둠벙)에 담긴 끈끈한 점액이 저마다의 특질을 발휘하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며 그 과정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려냈는데, 이문구 작가는 그 과정을 좀 더 크게, 가시적으로 묘사했다. 결국 리처드 도킨스는 생명에 대한 이해를 자연과학의 시각에서, 이문구 작가는 인문과학의 관점에서 묘사했으되 그 원리는 놀랍게도 일치한다.   


끝으로, 자동카메라로 단 몇 초만에 달을 찍어버리는 현대의 사진작가는, 광량조절이 안 되는 원시 카메라로 오직 달 하나를 찍기 위해 밤새  달을 지켜봐야 했다는 150년전의 사진작가에 비해 달을 피상적으로밖에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떠 오른다.


그나마 옮겨 적은 주요 구문들...

한배에 난 강아지도 쌀강아지 보리강아지가 있는 벱인디...

아침나절부터 시내에서 흥뚱거리다가 다 저녁때야 깃들이헌 남편...

허기사 인정 많은 년 속솟 마를 날 없기지.

생긴 것은 바가지에 밥 푸고 호박잎에 건건이를 담아 먹게 생겼어도.

그 동네에서는 그나마 쳐 주는 풍신이었지.농촌은 마을방 고스톱이 동네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너, 애장터 진달래꽃 숭어리는 왜 더 빨갛고 무덕 져서 피는지...언내가 잘 적에 보면 입술이랑 볼때기랑이 빨간치?

난 고기를 발켜두 기른고기 즉, 축사축, 조롱조, 어강어. 이 시가지는 육미를 못 히서 소증이 나더라도...

토종두 박래품버덤 센 눔은 세여.

농사꾼은 허리를 구부리기보다 펴기가 더 어려워.

농자가 뒤집어지면 욱자여


전자사전으로 찍어 봤던 주요 어휘들(그러나 절반 정도는 검색불가)


수멍

복찻다리

무름허다

개호주

징상맞다

중구라기

끄덩이

바심(타작)헌 곡식

여투다

야살쟁이

에멜무지로

까끄매(까마귀)

비라리

속이 달쳐서

탑세기

비그이

솔수펑

구새먹은 고목

들바라지

마들가리

물거리

작벼리

메지다

희읍스름허다

달구리(닭 울 무렵)

우듬지(나무 기둥)

근 두어 파수째(장날이서 다음 장날까지의 기간)

분땀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