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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hodgePodge)

2023.07.29. 써든 어택트(교통사고)

본격적으로 탄 건 12, 깔짝짤짝 끄신 것까지 포함, 30. 오도바이 참 오래도 탔다.

 

그 긴 시간 온몸을 오직 바람에 맡기고 쏘댕겼음에도 지금 이렇게 숨쉬고 끼적이고 있음에,

그리고 다시 또 오도바이 끄실 생각을 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인생은 매일 매일이 덤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반백년을 넘어가고 있는 나이고 낼 모레면 60이요 어어허다보면 70이다.

분명 어느 시기엔 기력이 쇠하여 더 이상 타지 못할 날이 올 터.

과연 그 날까지 무탈하게 즐길 것인가, 아니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어느날 바접당할 것인가?

확률적으로 보나 운전성향으로 보나 무탈허게 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혹 다시 사고가 나더라도 그 또한 인생이리라...

 

그간 바이크생활 중 사고는 한 번 있었다.

교통사고(accident)라기보다는 뜻하지 않은 사고(happening)라고 보는게 맞겠다.

 

8년 전인 20158월 말 토요일 오전 10,

정읍시 옹동면소 근처 지방로를 완속으로 달리던 중 길옆 풀숲에서 고라니 2마리가 갈짓자로 뛰쳐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자리에서 전도되어 왼쪽 무릎살갗이 너덜너덜 피범벅이 되었다.

넘어지는순간 오도바이(W800)를 포기하고 핸들을 놨어야나 꼭 죄는 바람에 오도바이에 눌려 무릎 찰과상이 심히 가중됐다.

설상가상으로 그땐 무릎보호대 있는 라이딩바지가 아닌, 일반 청바지였다.

마취없이 수술하던 고통, 두다리로 걷지 못하여 열흘간 병원에 갇혀있던 답답함,

집에는 사고를 숨겼던 죄송함 등등...

일시적 시련이었지만 그 또한 인생에 소중한 한 페이지였다.

혹자는 인생은 축복이라 했던가, 결과적으로 이렇게 무탈허게 글을 쓰고 있으니 축복은 축복이다.

 

 

두 번째 사고는 지난 2023. 7.29. 오전 10.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옹동면소 근처다.

칠보에서 태인방면으로 신호등 없는 옹동교차로 진입직전 멀리 우측에서 좌측방면으로 횡단보도 앞에 봉고트럭 한 대가 멈춰 있었다.

마침 나는 시속 50~60키로 정도로 앞차와 일행처럼 달리던 중이었다.

앞차가 그 속도 그대로 교차로를 통과했으니 나 또한 물흐르듯 앞차따라 교차로를 통과하려던 찰나,

세상에나 멈춰있던 봉고트럭이 느닷없이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브레이크를 밟기에도 급선회하기에도 너무 짧은 거리여서 충돌을 회피할 수 없었다.

쿠웅트럭 옆구리를 박고 오도바이와 함께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놀란 봉고트럭 운전자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오도바이를 보지 못 했습니다.”

아니 제 오도바이가 택트도 아니고 대형오도바이(GSX250E)에 라이트까지 켜고 있었고 더군다나 앞차와 안전거리도 유지하고 달리는데 못 봤다니요?”

심히 납득이 안 가고 억울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트럭운전자는 선해 보이는 인상에 초로의 농부였으며 게다가 잘못했다고 그 자리에서 용서를 구하고 있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랄까?

 

2015년 사고의 트라우마로 한여름 염천에도 자켓에 보호대청바지는 기본였기에 다행히 부상은 없었고 또 오픈 하이바였지만 강화 프라스틱 쉴드를 내려썼기에 쉴드 기스외에는 머리도 멀쩡했다.

다만 오른손 전체에 감각이 사라져 버렸다.

좀 쎈 타박상이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 요행수를 바랐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11시 전주 수병원에서 X레이를 찍어보니 손목에 다발성 골절이 심했다.

입원은 월요일 오후에 수술은 화요일 오전에 잡았다.

한팔이 삐꾸났으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 하고 청소도 못 하고 밥 짓기도 힘들다.

체어맨이 있어서 그나마 한팔로 오토 운전은 가능했다.

 

수술은 봉황세 선생님이 집도하셨다.

5cm정도 손목을 째고 플레이트를 삽입하여 뼈를 연결했고, 손등 옆구리에 고정못 3개를 박았다.

한여름 더위에 아대와 붕대로 꽁꽁 싸매니 끈적끈적 땀이 찼다.

세상에나, 며칠 후에는 손가락 사이에서 주황색 버섯이 선연했다.

손이 내 손이 아니고 이물감도 컸으며 시시때때로 욱씬욱씬 쑤시고 어먼힘을 받아 고정못이 잘못될까 조심스러웠다.

대체로 의학적 예측은 벗어나지 않는다.

입원기간 열흘동안 차츰 감각이 돌아왔고 아쉬운대로 한손이나마 샤워도 가능할 정도로 호전되었다.

 

기왕 벌어진 사고, 모처럼만의 휴식이려니 생각해야지 어쩌겄는가.

열흘동안 2702인실에서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도 읽고 한쪽 발가락에 골절상을 입은 표선생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며 모처럼만에 휴양하듯 지냈다.

다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고났다는 사실 자체가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어디다 억울함, 아픔을 하소연할 수도 없으니 부모님은 물론 동료 라이더나 친한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가해자는 병문안은커녕 전화 한 통화도 없다.

요즘 트랜드가 그렇다고는 하나 사람 이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내 사상으로는 참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퇴원때쯤 붕대도 풀 수 있을까 한가닥 요행수도 기대했지만,

웬걸 무려 7주간을 붕대와 아대로 칭칭 동여맨 채 지냈다.

 

내가 다시 오토바이를 탈 수 있을지, 아니 이제 타지 말아야지,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리갔다리했지만,

점점 회복되고 있는 손목을 보니 다시 타는 쪽으로 가닥잡았다

일정35년은 고난속에서도 축복였다는 문창극의 말마따나 이 또한 소중한 경험이자 축복이다.

단 무수히 많은 시간과 장소의 조합을 놔두고 왜 하필 그 시각에 그 장소를 지나쳤을까...

 

가해자측 보험사에서는 세상에 과실없는 교통사고가 어딨냐며 20%~30%의 과실은 감안하시라는 말에 소송도 불사하려 했으나 구체적인 진술과 적극적인 시뮬레이션으로 반박하여 10%로 합의하였다.

합의금은 1년 후가 될지 2년 후가 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전주 수병원 정경

 

 

 새북산책중, 먼 훗날 이날이 떠오를 때가 있으리라 

 

 

 

 

 

 

열흘 후 퇴원을 앞두고 침상정리 중 

 

 

 

 

 

 

 

 

 

한 6주간 못 박힌채  댕겼다. 하이고 징그라 

 

 

뭣을 먹든 끼니는 맛납게, 본의아니게 먹방

 

 

역시 새북산책 중 일출 한캇, 병상 중에도 일상은 반복된다